민의 새 학기
봄도 오고 그도 왔다. 사춘기. 볼을 비비는데 솜털의 느낌이 아니다. 훌러덩훌러덩, 주의를 주는데도 훌러덩이다. 옷걸이에 안 걸어 너~! 감기 이후로 변성기가 온 모양이다. 이전의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다. 민이보다 먼저 변성기가 온 친구 래래를 보고, 아! 저게 변성기구나! 알았는데 비슷한 소리가 난다. 아쉽다. 게임할 때는 돌고래 소리가 난다. 도파민이 터지는 소리, 게임 브금 소리마저 요란하다. 변성기에는 목소리를 아껴야 한단다. 저 소리도 좀 안 났으면.
“소리 좀 줄이자.”
시력도 문젠데 청력도 걱정이다. 어떻게든 안경을 안 쓰게 하고 싶어서 ‘쿨 타임 제도’를 만들었다. 게임한 시간만큼 미디어를 쉬는 것이다. 그 사이에 민이가 하고 싶은 취미를 하면 된다. 쿨 타임에 공부하고 있을 때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게임 20 분하고 쿨 타임을 갖도록 했는데 그거 체크하다가 내가 단명될 지경이다.
“지금 시간 지난 거 아니야?”
“이것만 하고.”
둔탁한 목소리 어째 더 정이 없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시간을 정했기 때문에 짤 없이 시간으로 다그쳤다. 껐느니 안 껐느니, 언제 끌 거니. 정해진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아들이 아닌 내가 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시간으로 게임을 할 수 없는 노릇, 판이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게임을 알아야 했다. 이렇게 저렇게 관심 있는 척 질문도 하고 게임에 나오는 브롤러를 만들거나 그릴 때면 전폭적인 지지를 해줬다. 게임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클레이 사주기, 그리기 도구 마련해 주기.
“엄마 좀 잘게.”
초저녁잠을 자면 안 되는데…. 밥을 해야 하는데…. 하면서 잠을 잤다. 입은 마르고 몸은 무겁다. 차가운 공기가 날 깨운다. 밖에서는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딩딩, 퓨퓨, 우잉우잉.
“너 아직도 게임하고 있어!!!”
“아니, 나 책 보고 있는데?!”
딩딩, 퓨퓨, 우잉우잉.
“너 엄마 자는 동안 계속 게임했지?! ”
“하다가 나도 좀 잤어! 잠이 안 와서 책 읽고 있는데 왜 그래?!”
분명히 들었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분주한 시계가 6시 반을 가리킨다.
아이가 어릴 때, 잠결에 들린 TV 소리가 왜 이렇게 크냐며 역정을 냈었다. 그런데 그 소리는 내가 틀어 놓은 라디오 소리였다. 민이는 화를 낸 엄마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고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다. 그 후 엄마가 자기만 하면 예민해진다고 경계 태세를 갖췄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자면 TV 소리를 더 줄인다. 놀 사람이 자고 있는데 TV를 보는 것은 어찌 보면 안전하고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미디어를 오래 하는 것에 양육자인 엄마로서 자책과 반성을 동시에 하며 스트레스를 만들고 있었다.
몽롱한 정신에 저녁을 차려야 한다. 이 방학은 언제 끝날지.
“아 그래? 책 읽고 있었구나. 뭐 봐~?”
때는 늦었다. 너무 늦게 목소리가 차분해졌기 때문이다.
*
주말 오후 모처럼 하늘이 맑다. 나가기 딱 좋은 날씨다.
“엄마 그 지우개 있잖아. 어디서 샀어? 친구가 생일인데 그거 다하면 얼마나 커??”
“손바닥만 하지 천 원이야.”
친구 생일이라서 선물을 고민하는 모양이다.
“애들이랑 생일 이야기 하다가 지우가 바로 내일이라는 거야. 그래서.”
음~ 여자 사람 친구의 생일 선물이라니, 엄마의 레이더가 켜지고 있다. 섣부른 질문 공세는 금물, 그가 입을 닫을지도 모른다. 정색과 함께.
새 학기, 아들은 색연필을 사야 한다며 책상에 앉았다.
“쓰다 만 것도 많은데, 거기서 추려가지.”
사인펜을 하나씩 정리하더니 이름 스티커가 떨어져 너덜너덜해진 것을 만지작거린다.
“그냥 하나 사주면 안 돼?”
버리지도 못하고 사기에는 환경오염이라는 강의가 펼쳐지는 찰나 민이는 내 말문을 막았다.
“좀 깔끔하게 새것 사주면 안 돼? 깔끔하게 보이고 싶어!”
남의눈을 의식할 나이, 사춘기라는 것을 간과했다. 지구에는 미안하지만 바로 수긍하고 사주기로 했다. 다있소에 갔다. 색연필을 겨우 구했다. 이 동네는 초등학교가 많아서일까? 신학기 문구가 동이 났다. 그것도 모르고 몇 바퀴를 돈 건지. 겨우 색연필을 구해 돌아서는데 귀여운 지우개가 눈에 들어왔다. 미니 간식 세트 지우개, 너무 앙증맞고 레고처럼 빼고 끼울 수 있다. 옆에 동물 모양 세트를 살까 간식 모양 세트를 살까 두 개를 집었지만 요즘 사다 주는 족족 먹방을 보여주는 터라 간식 세트로 골랐다.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쏠쏠한 재미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가끔 하나씩 꺼내 주려다 다 열어줬더니 레고를 좋아하는 아이답게 꼈다가 뺐다가 손이 바쁘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은 금세 때가 꼈다. 그런데 웬걸 잘 지워지기까지 한다. 얼마나 좋았으면 여사친에게 선물로 이것을 줄 생각을 했을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아 궁금하다. 그런데 왜 굳이 그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