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님
천 원짜린데 괜찮아??
“내가 주는 거 아무거나 상관없대”
아무거나, 상관없다? 순수한 선물의 의미를 되새겨 주는 말에 절로 고개를 숙였다.
며칠 나를 들들 볶더니 주말 오후, 좀 쉬어보려 침대와 한 몸이 되려는 찰나 지우개를 사러 가자고 한다.
‘그래 집에서 게임 안 하는 게 어디야. 이번 기회에 봄바람이나 쐬고 걷고 와야지.’
민이는 나갈 채비를 하며 머리를 빗고 웬일로 운동복이 아닌 봄 신상으로 빼준 와이드 데님 팬츠를 입는다. 학교 갈 때 좀 입으라 해도 검정 추리닝만 입더니. 야구점퍼에 딱 남친룩이다. 나는 어서 빨리 커피를 타 텀블러에 담고 장바구니도 챙겨 작은 손가방에 넣었다.
생각보다 바람이 불었지만 아이는 시원하다며 바람에 머리를 쓸어 올린다.
“이번에 히로처럼 해볼까?”
“히로? 히로,,.히로?”
얼마 전에 본 드라마 남주 머리스타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벌써 중고등학생처럼 머리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육 학년이다.
“앞머리 때문에 여드름 나지 않을까?”
“…. 지금, 이 스타일이 좋긴 좋아.”
봄바람이 그늘에서 돌변하는 것처럼 민이도 이랬다 저랬다 지금 머리가 마음에 든다는 둥 스타일을 바꿔보고 싶다는 바람을 타는 모양새다. 그래, 하고 싶을 때 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지우개를 찾았지만 역시나 새 학기 시즌 상품이었던지 아기자기한 학용품들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밋밋하고 익숙한 녀석들이 걸려있다. 민이는 그곳에서도 손가락 만 한 귀여운 형광펜과 누르면 판다가 나오는 볼펜을 들었다. 나도 아이 문제집에 찍어줄 스탬프를 찾고 있었다. 종류가 너무 없다. 그래도 아직 3월인데…. 요즘 이곳은 실용적인 약이다 잡화다 해서 문구 세트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엄마 저기 오르골 있어.”
가보니 정말 오르골이 있었다. 너무 로맨틱한 선물이 아닌가. 민이는 한참을 바라보더니 나의 허락을 기다리는 듯했다. 괜찮다는 말에 그것을 손으로 잡는 순간 가격표가 있는 부분이 조금 찢어지고 먼지가 쌓인 것을 보더니 다시 내려놓는 게 아닌가. 다른 것은 없었다. 민이는 처음 골랐던 펜으로 결정했다.
이제 공원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타 온 커피를 마셔야 한다. 다리도 좀 쉬고 싶은 마음에 먹을 것으로 유인했다.
“맥날 간식 먹을래?”
“아니, 와플”
와플이면 역사에서 파는 바삭하고 달콤하고 가격까지 좋은 간식! 그래 오늘은 하나씩 먹자! 분명히 한입 달라고 하면 안 줄 게 뻔하기 때문에 이 좋은 기류를 망칠 순 없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담은 텀블러를 열었다. 김을 호호 불어 한 모금 마셨다. 음, 물이 살짝 많다.
“같이 먹게 우유 싸 오지.”
‘녀석아, 엄마 이거 마셔야 저녁 할 수 있어.’
아이는 느끼하다며 음료수를 찾았다. 카드를 얼른 줘 보냈다. 조금이라도 이 한가함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무릎은 따뜻하고 커피는 조금 뜨겁다. 민이가 걸어온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초코우유를 빨대로 마시며 유유히 걸어온다.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오는 모습을 찍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 달려온다. 지워. 싫어.
묻지 않았다. 생일 선물을 왜 그 아이에게만 주는지. 왜 학원에서는 주기 싫은 건지. 그럼 학교에서는 어떻게 줄 건지. 선물 포장만 해주기로 했다. 복주머니처럼 하려는데,
“그냥 네모나게 해 줘.”
한껏 꾸며서 리본을 달아주려 하는데 그가 저지한다. 이유가 있겠지.
*
“선물 어떻게 전해줬어?”
“그날따라 래래 녀석이 주머니에 뭐가 있길래 만지작거리냐고 하는 거야.”
“정말? 눈치 백 단이네! 그래서?”
“쉬는 시간에 조용히 지우에게 말했어.”
“뭐라고?”
“가방 가지고 이리로 와.”
아들이지만 가족은 타인이기에 타당하던 그렇지 않던 예상 못 한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장르가 시시각각 변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나의 관찰 대상 1호 님이다.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관찰자의 소임을 다하기로, 한 명의 애독자로 서서 나에게 다가와서 재잘거리기를, 무던히 기다리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