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하는 여자들

아침을 깨우다.

by miya

8시, 알람이 나를 낚아 올렸다.

반사적으로 앉은 몸에서 초연의 힘을 발휘에 침대 밑 충전 중인 휴대폰을 껐다. 밤새 휴대폰은 충전이 되었는데 자고 일어난 이 몸은 내내 꿈만 꾸느라 방전이다. 다시 침대에는 누었으나 다시 자지도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다. 오늘 수영가지 말까? 이 생각은 자기 전부터 했는데 밤을 지나고도 물음표가 아직도 붙어있다. 오늘부터 추워진다더니 침대 옆 창틈으로 바람이 들어온다. 그래도 올해는 뽁뽁이를 단단히 붙여놓아 잘만 하다. 조금 더 잘까? 8시 반부터 눈을 한번 뜨는데 10분씩 지나간다. 결국 8시 50분에 일어났다. 유부초밥에 시금치 된장국 사과 몇 조각을 잘라서 식탁에 준비했다. 수영할 생각에 유부초밥 3개를 입으로 넣었다. 사과도 한 조각 먹으며 수영가방을 쌌다. 며칠 전 장미향 트리트먼트를 산 것이 기대가 된다. 부피는 크지만 가서 쓸 생각에 잘 구겨 담는 중이다.

“엄마 수영 다녀올게”

어제 그 일은 잘 일단락 됐다. 양심은 있어가지고 어제 미안한 마음에 그냥 잤다고 한다.

그런 마음 있으면 됐어. 퇴근 후에는 엄마도 영화에 집중을 잘 못하니까 일찍 보던지 금요일에 길게 보던지 하자.”

하루가 지나 마음의 불은 사그라졌다.

이제 9시 20분이면 나가야 한다. 롱 패딩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나왔다. 공기는 조금 다르지만 견딜만하다. 그동안 강추위에도 물속에 몸을 담갔으니 이제는 마음이 움츠려 들진 않는다. 그저 발걸음을 떼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오늘은 늘 상 같이 가던 친구가 안 나왔다. 감기기운 있다더니 못 나왔나 보다. 입방정 떨기 싫지만 수영 다니면서 감기는 좀 덜 걸리는 듯하다. 작년 11월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그때 슈퍼 면역이 생긴 건가?

-나 자수 왔어-

경찰서에서 쓰는 말인가 이게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수, 자유 수영을 말한다. 이 줄임말을 먼저 쓴 건 수경이다. 이수경. 나보다 먼저 수영을 시작했는데 강습반이 타이트하지 않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고 답답해한다. 하지만 일 끝나고 하는 저녁 수영에 맛 들이고 나서는 가는 것 자체로 활력이 된다고 한다. 전직 쇼핑몰 사장님인 그녀의 서랍에 수영복이 아마도 열 벌은 넘지 않을까.

나는 한 벌이다. 블랙 원피스에 하얀색 테두리. 처음에는 오랜만에 등을 훤히 보이는 수영복이 민망했다. 그래서 선택한 블랙, 하지만 수영장에 가보니 나는 선비나 마찬가지다. 알록달록 체크무늬 원색의 강렬한 원피스들. 도대체 왜 이렇게 현란한 무늬를 입고 올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내 눈에는 그저 알록달록한 어린이집 내복 행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추첨에 당첨되어 체육센터에 등록하며 주 2회 이상 수영을 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뭐 전멸한 주도 있었지만, 이렇듯 아침을 수영으로 깨우는 것이 나의 루틴이 된 것이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서 8개월 차에 접어드는 지금 인터넷 쇼핑몰에서 수영복을 검색한 지 2주가 다 되어 간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하지만 다시 블랙으로 돌아갈 마음은 없다. 나도 내복 행진에 합류하고자 한다. 수영에 자신감이 생기니 그 현란한 물결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몸짓이었다. 이제야 허리에 손을 올린 그들의 눈빛이 보인다. 아침을 깨우고 나선 그들이 보인다. 조금만 날씬했다면 더 화려한 원색을 골랐을 텐데, 그린으로 정했다. 그리고 수모를 화이트로 바꿨다. 블랙의 늘어난 원피스는 이제 안녕이다. 배송 요청을 눌렀다.


버스에 올라탔다. 이제는 가서 입수하는 일만 남았다. 그전에 깨끗하게 씻는 일은 필수! 안 씻고 들어가면 기존 선배들에게 지적을 당한다. 처음에는 수영장 텃세다 뭐다. 눈살을 찌푸렸는데 수영하다 물도 많이 먹게 되니 깨끗한 몸으로 들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 씻어보자, 오늘은 강습이 없는 자유 수영 날이니 급하게 씻지는 않아도 된다. 샤워실에 들어섰다. 문이 열리고 눈에 들어오는 한자리, 바람을 직격타로 맞는 자리지만 한 자리뿐이다. 서둘러야 한다. 바람이 휭- 오들오들 춥다. 가방을 열어 샴푸 바를 꺼내 머리를 감는다. 샴푸를 쓰다가 비누로 바꾼 지 몇 달 됐다. 수영하며 매일 두 번씩 머리를 감는 것이 두피도 머릿결도 걱정이라 좋은 비누를 골랐다. 나에게 베푸는 시간, 기분 좋게 거품을 낸다. 거품이 쫀득쫀득하니 상쾌하다. 그 거품을 온몸에 휘감고 손이 안 닿는 등까지 문질문질. 올인원. 이 모습은 마치 군대 샤워와 흡사할까? 씻는 속도가 점점 단축된다. 깨끗하게 샤워하고 이제는 수영복과 수모 물안경을 꺼내서 착용만 하면 된다.

‘아뿔싸. 내 수모, 어? 수경은 어디 갔지?’


그 두 개를 안 가져왔다. 이렇게 되면 샤워만 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내 금요일, 주말 전 개운한 운동은 날아가는 것인가. 포기할 수 없다. 강습을 끝낸 언니들이 줄을 선다. 줄이 길어진다. 빨리 샤워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눈빛들. 그 눈빛들 속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같이 강습받았던 사람들이 없다. 한 사람 눈에 들어왔지만, 말을 섞어보지 않은 터라 갑자기 빌려달라고 하면 돌아올 반응은... 질끈 눈이 감긴다. 길게 늘어진 줄 뒤로 키 큰 언니가 보인다. 십 분도 안 남은 시간 그녀의 손도 분주하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저…. 모자랑 물안경 안 가져왔어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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