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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노우라 Jan 04. 2018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휴학을 하겠다고, 휴학을 할 거라고, 휴학을 한다고 떠벌리기를 얼마나 한 걸까? 낭만적 휴학을 상상하며, 기말고사를 치르고, 과제를 제출했다. 날은 점점 추워가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휴학의 실감은 내년 봄이 되어야 날 것 같다. 아직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다. 지금 이 시기는 휴학이 아니라 그냥 방학이다.


 나를 강제로 달리게 하던 시험과 과제가 없어지고나서 도착지에는 허무함만이 남았다. 성적이 나오면 또 마음이 동하게 될까? 항상 뭔가 소속되어 있던 곳이 없어지는 건 어떤 기분일까? 휴학을 다짐한 나는 지금 무얼 해야할까?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침대에 누워서 이불과 부비부비 하고싶었다.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시험 기간에 공부가 지루할 때마다 노트에 썼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시험 끝나고 할 일들 목록'을 펼쳤다.


 그곳에는 '메모장 펜 홀더 시제품 만들기'가 적혀있었다. 그래서 문구점에서 글루건과 고무줄을 사와서 노트의 밴드를 만들었다(글루건을 쓰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심지를 3개나 썼다!). 문구점 위에 있는 서점에서 누나와 자형의 선물도 사고, 내가 읽을 책도 샀다. 그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고민을 많이 했다. 원래 책을 오프라인에서 구매를 잘 안하지만 바로 골라서 샀다. 디자인 관련 책과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책을 샀다.


 할 일이 없다 그랬지만, 찾으면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교에서 수업도 듣는다. 금요일 저녁엔 천안에 가 있을 것이고, 그 다음날이면 춘천에 있을 것이다. 일요일 저녁엔 대구에서 약속이 있다. 하지만 전체 기간에서 얼마 안되는 이 하루만 할 일이 없어도 나는 무척 공허하고 지루해졌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시험을 그럭저럭 잘 쳤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잘 쳤냐고 물으면 망했다고 답하는 그런 심정이던가? 할 일이 없다고 마냥 중얼거리지 말아야겠다. 사실 할 일이 태산인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게 낫겠다.


 최근에 다시 읽은 '행복의 기원(서은국, 21세기북스, 166p)'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년 전 한 신문사에서 한국인에서 한국인의 삶을 함축하는 내용의 수필을 공모한 적이 있다. 최우수상을 받은 수필의 제목은 '시험'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평생 정답을 찾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하나로 수렴되는 생각을 하는 데 익숙해지고, 정답에서 벗어난 가치와 행동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느낀다."


 휴학을 한다는 것은 잠시 학교를 벗어나 있겠다는 말이다. 이는 시험과 시험으로 이어진 학기라는 잘 닦여진 길에서 한 발 옆으로 물러나겠다는 말과 같다. 책에서 언급된 시험과 정답에서 벗어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내가 드는 생각은 불안과 설렘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게될까?


누나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뭘 먹을지 메시지를 주고받으니 반가웠다. 내일이면 몇 달 간 만나지 못했던 누나를 만나러 간다.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새로 문을 연 가게 얘기? 결혼 생활? 저녁 식사가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한 얘기들? 말다툼을 하기도 하려나, 여하튼 즐거울 것이라 상상하며 버스를 타야지. 마지막 과제를 제출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 카페에 죽치고 앉아 쓰는 잡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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