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요즘 왜 학교 안 나오냐?”
“휴학했대.”
간단명료한 대답. 뭔가 사정이 있을 줄 알았는데 휴학이라니, 의외였다. 하지만 그 아이와 술자리에서 나눴던 말을 되짚어보면 이전 휴학 때 했던 것들을 말하길 좋아했었다. 아니, 우리가 말하길 강요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위기가 다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 그동안 뭐 하고 지냈냐면서 떠들썩했었다. 그런 와중에 휴학은 술안주 삼기에 참 좋은 단어였다. 다들 술기운이 올라 있는 상태에서 휴학 이야기가 나오면 잘 했네, 못 했네, 멋지다, 좋겠다는 말을 연발했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작 애들이 휴학 때 어떤 걸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 나도 다음 학기에 휴학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라, 그 아이의 휴학 소식이 더 궁금했다.
“휴학하고 뭐한대?”
“나야 모르지.”
동방 구석에 누워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휴학할 이유가 딱히 없을 텐데.”
“아니, 존나 많지.”
친구는 친히 손가락을 접어가며 말했다.
“군대, 병, 집안 사정, 여행, 아니면 충동적이고 전략적인 거, 수강신청 좆망났거나 중간고사 망했을 때 매우 신속하게 결정해줘야지. 학교에서 사고 쳐서 매우 쪽팔린 상태거나 과CC 깨졌을 때, 아니면 공무원 준비나 취업하려고.”
나는 솔직히 감탄해서 말했다.
“새끼, 대단하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
“척 보면 알지. 주변에 그런 애들 천진데.”
“그럼 넌 휴학해본 적 없는 거야?”
“안 했어. 하고 싶긴 한데, 할 이유가 없다.”
“뭔 소리야 그게.”
“못 알아들었으면 말고. 근데 너야말로 휴학한다고 하지 않았냐?”
“어. 내가 그랬었나?”
“그냥 하는 소리지? 습관처럼.”
습관처럼. 무서운 말이었다. 군 전역을 하고 복학을 한 다음 1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색할 것만 같았던 학교생활은 금방 익숙해지긴 했다. 그런데 마음속에 남은 이 찜찜함은 무엇인지, 불안했다. 이제 내년이면 3학년이다. 또 1년이 흐르면 4학년이 되는데, 취준을 하던, 대학원을 가던,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다. 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학교에서 남은 2년 남짓한 기간에 과연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휴학은 이 모든 간절한 물음에 대한 답일 수가 있을까? 도박 같았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휴학 끝에 나는 어떤 답을 가지고 학교로 돌아올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동요한 마음을 숨기려 애썼다.
“그래. 휴학하면 진짜 좋겠다.”
기말고사 공부를 하다 충동적으로 카카오톡을 켰다. 지난달 갑작스럽게 휴학을 했던 그 아이의 카카오톡 프로필이 어쩌다 눈에 띄었다. 동그란 프로필 사진 옆에 빨간 점이 있었다. 터치해 확인해보니 해외여행 중에 찍었는지 배경으로 거대한 유적지가 펼쳐져 있고, 선글라스를 낀 채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그 프로필 사진이 예전에 갔던 여행인지 현재 진행형인 여행 사진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상태 메시지는 ‘처음처럼’ 이었다. 뭘 처음처럼 하고 싶은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이 아이는 나보다는 행복하지 않을까, 하며 도서관에 박혀있는 나의 신세를 한탄할 찰나 옆에서 누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깜짝 놀라서 반사적으로 스마트폰 잠금 버튼을 눌렀다.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궁금하면 메시지를 보내라, 인마.”
선배였다.
잠시 쉬러 나와서 선배랑 두런두런 시험 이야기를 했다. 오늘 몇 시까지 공부할 예정이다, 공부 너무 힘들다, 이 과목 개쓰레기 아니냐, 자살하고 싶다 등 암울한 이야기가 자판기 커피와 함께 목구멍에서 흐르듯 자연스럽게 선배에게 물었다. 휴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왜, 휴학하고 싶어? 잘 생각해. 그 기간에 뭐 할 건지 미리 계획을 다 짜고 하라고. 무턱대고 놀고 싶다, 쉬고 싶다고 했다간 나중에 후회할 거야.”
아차, 싶었다. 선배의 일장연설이 이어질 것 같아 얼른 대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제 곧 졸업하는 선배에게는 민감한 주제였을 것이다. 나는 이제 2학년이 끝나가고 있어서, 전공은 어느 정도 친숙해졌지만, 시험공부를 하면 가증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취업은 적어도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는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또 달랐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아니 넌 이미 늦었다.’ 등등… 나는 언제부터 불안해야 하는 건가, 미래를 얼마나 걱정해야 하는 건가, 생각할 때쯤 연설이 끝나가고 있었다.
“…면접 때 다 설명해야 해. 그때 뭘 했는지.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한다고. 근데 그때 놀기만 했으면? 어휴.”
나는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적당히 얼버무리고 다시 공부하러 들어가자고 했다. 그러자 선배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며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렇게 궁금하면 메시지를 보내라, 인마.”
선배의 말이 떠올라 열람실로 돌아가는 길에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을 풀었다. 아까 보고 있던 그 아이의 프로필 사진이 나왔다. 사진을 보면 해외인데, 여행이 아니라 봉사 활동을 갔을 수도 있다.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기업이 지원하는 해외 봉사 활동, 봉사하면서 대기업의 복지에 감탄하고, 거기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그 기업의 서류 지원 전형을 면제해주는 혜택까지…. 설마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던 중, 누가 손을 툭 치고, 손가락이 미끄러져 사진 상단에 1/32라고 되어 있던 것이 2/32로 바뀌었다.
다른 여행 사진 같았다. 그 아이 본인은 나오지 않고, 북적이는 유럽 도시의 밤 풍경을 찍은 사진이었다.
남이 숨겨놓은 돈을 찾은 것처럼, 은밀하고 빠르게 사진을 밀어 넘겼다.
3/32, ‘SAVIOR CLASS 00기 해단식’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3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똑같은 초록색 조끼를 입고 활짝 웃은 채 찍은 사진.
6/32, ○○기업 인턴 수료증을 손에 쥐고 찍은 셀카.
9/32, ‘○○○분야 통합학술대회’라고 적혀있는 현수막 아래 수백 명의 사람이 앉아 있는 강당에서 그 아이가 발표하고 있는 모습.
11/32, 황량한 벌판 위에 세워진 천막 아래 유니폼을 입고 흑인 아이들과 찍은 사진.
12/32, 밝은색의 원피스를 입은 그 아이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카페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놓고 맞은편의 사람이 찍어준 사진.
열람실 문 앞에 도착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잠금 버튼을 꾹 눌렀다.
“휴학을 하고 싶다고?”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나지막이 네, 하고 대답했다.
“재밌다 하지 않았니? 전공 공부.”
“네, 그렇죠.”
“근데 왜 휴학을 해? 흐름 안 끊기게 계속 쭉 하지.”
“음….”
‘그냥 하면 안 돼요?’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어머니에게는 내가 휴학하는 합당한 이유가 필요해 보였다.
“혹시 쉬고 싶니?”
“아니 그건 아니고….”
쉬고 싶다고 말하면 어머니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게 두려웠다. 중간고사-과제-기말고사의 반복이 지겹고 멈춰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또 어떨까? 나는 어서 독립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만큼 무서웠다.
“휴학 때 계획은?”
“어… 음…. 여러 가지….”
어머니는 앞을 바라보고 있어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금 전에 내가 대답한 바로는 나는 쉬려고 휴학하는 게 아니었다. 이제까지 만났던 휴학을 경험했던 친구들을 떠올렸다.
“대외활동이랑… 봉사 활동이랑… 잘 되면 인턴도.”
“종이에 상세히 적어서 보여 다오.”
아버지가 말을 끊었다.
내가 한 면을 빼곡히 채운 A4 용지를 아버지에게 보여준 건 꼬박 1시간 뒤였다.
“이걸 다 할 수 있겠니?”
나는 최대한 하도록 노력해야죠, 라고 대답했다.
“아들아,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냐?”
“네?”
“이걸 보면 인턴, 공모전, 봉사 활동, 여행, 아르바이트…. 적을 수 있는 건 다 적은 것 같은데, 일관성이 없어.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구나.”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요?
“…일단, 이것저것 해보고 알아봐야겠죠.”
나는 얼버무리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다.
“학교를 계속 다니다가 휴학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 정말로 하게 된다면, 이런 걸 다 하면 어떻게 되는데?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지만, 충동적으로 결정한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아버지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자상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아들아. 휴학, 왜 하고 싶다고 했었지?”
‘휴학하면 진짜 좋겠다.’
머리가 울렸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종이를 던지듯 놓았다. 불이 꺼진 방 안은 왠지 모르게 포근하고 편안했다. 침대에 누워 습관적으로 카톡을 켰다. 손가락으로 친구 목록을 드래그하면서 쭉 훑었다. 그 아이의 프로필 사진 왼쪽 위에 빨간색 점이 생겨있었다. 사진은 저번과 달랐다. 얼핏 봤을 때 무슨 사진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 아이는 답을 찾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찾았을까?’
나는 그걸 터치하려다가 멈췄다.
‘상관없어.’
손가락을 움직여 그 아이의 이름을 왼쪽으로 밀었다. 그 아이의 이름 오른쪽 끝에 네모나게 회색과 빨간색의 숨김/차단 버튼이 생겼다. 손가락을 움직여 숨김을 눌렀다. 나는 잠금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스마트폰을 놓고 한참 천장을 바라보다가, 책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섰다. 종이를 펼쳐 뒷면이 위를 보도록 놓았다. 손을 뻗어 책상 등을 켰다. 아무것도 적지 않은 새하얀 종이가 어둠 속에 홀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