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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야노우라 Jan 12. 2018

자전거를 타고 걸을 수 있다면

 저녁 7시에 동대구역 근처에서 하는 강연을 신청했다. 강연이 시작 하기 전에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었다. 집에서 점심을 대충 해먹고 밍기적거리다가 오후 3시쯤에 나왔다. 오늘은 가방에 넣을 것을 다 챙겨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일은 없었다. 자취방을 올라가면서 강연장으로 가는 여러 방법을 떠올렸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빨리 오는 버스를 탔다. 동대구복합환승센터 건너에 내렸다. 커다란 신세계 백화점 건물을 오른쪽에 끼고 걸었다. 바람이 찼다. 몸을 웅크리고 코트를 여몄다. 옛 터미널 건물들을 지나쳤다. 커다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 불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면 이렇게 걸을 일이 없을 텐데,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전거를 안 탄지 꽤 됐다. 어디에 놔뒀는지도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지니까 찬바람이 무서워서 안 타게 됐다. 자전거가 낡아서 점점 페달 밟기가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기어가 3단에서 바뀌지 않고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자전거가 낡은 게 맞다.

 나는 자전거가 좋았다. 학기 초, 자전거를 처음 장만했을 때, 편리했다. 걷는 건 낭비라 생각할 정도로 자전거를 타면 대학교 내부를 빠르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페달을 세게 밟아야 했지만, 수업 시간에 맞춰 아슬아슬하게 출발해도 괜찮았다. 교내에서 내 자전거의 목적은 순전히 '이동'이었다. 

 겨울이 되면서 나는 걷기 시작했다. 걸으려니 자전거를 탈 때보다 일찍 출발해야 했다. 내 걸음걸이가 느린 편이니 더 신경을 썼다. 지각을 하기 싫은 것도 있었다. 그렇게 걸어서 강의실로 향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 걷는 게 좋아졌다.

 이동에는 거리, 시간, 속력이 중요하다. 학교에서 자전거를 달릴 때면 이동의 3요소만 신경 썼다. 하지만 걸을 때는 달랐다. 3요소에 풍경이 추가되었다. 걷는 것은 자전거보다 느리다. 느릴 수록 나는 풍경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집을 나서서, 오르막길을 오른다. 나무와 건물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지나치고, 자연스레 머릿 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상상... 자전거를 탈 때와는 달랐다.

 자전거로는 풍경을 볼 수 없는 걸까? 볼 수 있다. 느리게 가면 된다. 페달을 세게 밟아 속력을 높이면 균형을 잃을까 불안하여, 앞만 보고 자전거에만 집중하게 된다. 예전에 여행을 가서 자전거를 빌려 탔었다. 저녁 장을 보러 갈때나 그냥 이동할 때나 자전거를 탔다. 급할 게 없었고, 바퀴는 천천히 굴러갔다. 그 때가 여행 중 가장 소중했던 순간 중 하나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차들이 정지선 앞에 쭉 늘어서 있었다. 도로를 건너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높이 선 건물들, 어둑해지는 짙푸른 하늘, 스마트폰 보며 걸어가는 사람, 대화하는 사람, 나 같이 웅크리고 걷는 사람이 보였다. 공기는 차가웠고, 입김은 보일랑말랑 했다. 손이 얼어 주머니 속에서 계속 꼼지락 거렸다. 신호등 불빛 밑에 숫자가 줄어든다. 빨리 걸으란 뜻이다. 나는 충분히 빨리 걷고 있는걸까? 자전거를 타고 걸을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생각하며 횡단보도를 다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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