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 여긴 어디.
본격 자소서 쓰기 싫어서 도망쳐 쓴 브런치.
-역시 시험기간엔 뉴스도 재밌는 것처럼, 그렇게 못쓰던 브런치도 단숨에.
*거의 장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썼기 때문에-그 어떤 반박에도 한 방에 무너질 것입니다
자소서를 쓸 때 가장 힘든 점은 문항이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세상엔 나처럼 두 번, 세 번, 네 번 연달아 그 회사에 지원하는 루저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하기사 기업 측에서 생각해 줄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똑같은 문항-그것도 별로 많이 생각하지 않고 낸 그 문항-에 온갖 정열을 쏟아부어 몇 해째 글을 쓰다 보면 조금 억울하다. 야 인마, 작년에 쓴 글이 내가 경험한 모든 삶을 응축해서 쓴 궁극의 자소서인데! 내 인생은 여기서 멈춰있는데 더 이상의 에피소드가 없는데! 하지만 닥치고 또 꾸역꾸역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다. 어쩔 수 없다. 없는 걸 바라는 쪽은 나고, 있는 걸 골라 줄 수 있는 쪽은 그쪽이기 때문에.
고시 폐인(?)이 되다 보니 초월적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경쟁에서 져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임한다. 이런 안일하고 나약한 인간상 따위! 우리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이 아니야!라고 버럭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떨어진 걸까 생각해봐도 어쩔 수 없다. 나란 인간은 이모냥이다. 서류나 필기를 붙고 다음 전형을 준비할 때에도 내 마음에 동력을 심어주는 건 '저 사람을 이겨야 해'라기보단 '나 때문에 떨어진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만 해'이니까. 후자가 더 나를 긴장하게 하고 열심히 준비하도록 만들어준다. 누군가를 꺾어야 한단 생각보다는, 미안한 마음으로 임할 때 더 에너지가 나는 사람이니. 아무래도 운동선수를 한다거나, 이 세상에서 큰 권력을 갖는다거나 하긴 그른 것 같다. 아니, 이런 마음으로 임해서 금메달 딴 운동선수는 정말 없을까. 이런 마음으로 국회의원이나 장관 된 사람은 없는 것 같긴 하다만
루즈하게 내 템포를 지키며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은 내 친구 고씨의 명언처럼 취업 면접은 가위바위보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다. 음. 그러니까 내가 바위를 냈기 때문에 졌다고 말하기가 힘들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내가 진 이유는 내가 바위를 내고, 동시에 상대방이 가위를 냈기 때문에 진 것이다. 상대방이 무얼 낼지 나는 전혀 알 수 없으므로 내 탓이 아니다. (회사가 보자기를 낼 거라는 내부 사정을 훤히 알 수 있는 금수저라면 이야기가 완전 달라지지만-) 가위바위보에서 져놓고 스스로를 바보 같다고 탓하는 사람이 어딨는가. 하지만 면접을 마치고 돌아온 구직자들은 대부분 '그때 왜 바보같이 바위를 냈을까. 가위나 보를 낼 걸' 집에 돌아와 이불킥하기 일쑤다.
왜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운에 기대려 하냐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가위를 내고 있는 회사를 찾든가 아니면 나를 '가위'나 '보'로 보이도록 만들지 않느냐고. 하지만 항상 같은 패를 내는 회사도 없거니와, 그 해 함께 지원한 경쟁자들이 모두 가위나 보를 낸다면 그때는 오히려 바위가 빛을 보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결론은 결국 경쟁률 몇 백대 일을 넘어가는 기업의 면접 결과는 거의 랜덤에 가까운 확률이라는 거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의 문제가 된다. 해결하려 하지 않는 게 아니고, 애초에 해결할 수가 없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춘 자들이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는가. 운때가 맞아떨어진다는 말은 이래서 나온다. 모든 게 딱 맞아떨어져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순간' 우리는 면접에 붙는다. 뭐 정신승리를 거친 자기변명일 수도 있지만, 지금껏 취업시장을 지켜보다 보니 그렇다. 모두의 '때'가 있다는 말을 나는 정말 믿는다. 이제부터는 각자의 선택이다. 막힌 곳에서 꾸준히 쌓아나가며 때를 기다릴 것인지, 뚫어서 때를 당겨올 것인지. (그렇다고 합격자들의 실력을 비하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고생했다.) (똑같이 고생해도 다 같이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까지 불안정한 확률게임에 기대어서만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사회를 망쳐놓은 건 확실히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그들은 가위바위보가 아니라 부루마블을 했다. 1이 나오든 6이 나오든 더블이 나오든 무인도에 갇히든 한 바퀴 돌면 돈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 뽑으면 저녁을 굶는 복불복 세대다. 오히려 이런 환경 속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하루하루 버티고, 여전히 꿈꾸고 사랑하며 삶을 일궈내는 우리 세대가 정말로 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자소서를 쓰며 별 볼일 없는 인생을 곱씹고 또 곱씹어 쥐어짜 내다보면,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스펙을 갖춘 세대라기보다 단군 이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사는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질문을 던지게 된 시발점이 '뭐든지 한 번에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때문에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며 사는 세대가 되었다. 끊임없는 경쟁의 시대. 계속해서 실패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다 보면 자아성찰도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뭘 하고 있는 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인문학이 인기가 많은 이유도 이런 이유 아닐까 싶다. 자존감의 하락이 자아성찰로 건너가는 연결고리를 만들어준 건 아닐까.
그 어떤 세대보다 자기소개서를 많이 쓴 세대이기에. 미친 듯이 100통 넘게 쓴 자기소개서,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면접 질문들, 강제로 영위하게 된 '최소 반학기~몇 년 간' 백수생활 등등 이 모든 것이 오히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 할 잉여의 시간을 채워주는지도 모른다. 강제적으로 생긴 외부효과라는 사실이 씁쓸하긴 하지만 새삼 우리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만들어질 세상이 궁금해진다. 결핍과 실패로 점철된 세대였기에 무엇보다 공감에 능하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안다. 근거 없는 추측이라는 거.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도.
본격 자소서 쓰기 싫어서 도망쳐놓고 말이 많았다. 자소서 쓰려고 앉으면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이 되긴 그른 것 같다. "나무늘보 같은 신입사원이 되고 싶습니다!" "오! 그렇다면 방금 들어온 저 문으로 나가면 된다네!" 오늘 밤엔 이런 대화가 오가는 면접장 꿈을 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