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떠들고 싶어요

Let me introduce myself, plz-

by 블블

마음껏 떠들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럴 때면 함께 떠들고 싶은 사람도 생각난다. 재밌게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 그래도 몇 명 있었다. ‘떠드는 일’ 자체로 재밌고, 그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


학교 언론고시반에 오래 머물렀던 건, 6층 휴게실의 둥근 테이블 때문이었다. 그곳은 오고 가는 이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공간이었다. 휴게실 한가운데 질문이 풍선처럼 두둥실 떠오르면 사람들은 그 풍선을 툭 툭 건드리며 주고 받았다. 대답의 방식이 농담이었든, 진술이었든. 드립이었든, 고백이었든. 가볍게 내쳐지는 질문이 없었다. 예를 들면, 죽기 전에 삼겹살 한 조각을 쌈 싸 먹을 수 있다면 된장에 찍어먹을거냐 고추장에 찍어먹을거냐. 이런 쓸데없는 질문이었는데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고추장을 좋아하는 인간인가. 된장을 좋아하는 인간인가. 나는 왜 된장을 좋아하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된장과 연관된 어떤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자연스럽게 그 광경을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던 나날들이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안 해본 생각을, 자기검열이 끝나기도 전에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나면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러운 자기소개가 되곤 했다. 사람을 알아가는 데 필요한 건 마치 기호나 취향이 전부인 것처럼 그때 우리는 함께 앉아있는 상대방의 호불호를 탐닉하는 데 몰두해 있었다. 어제 본 드라마, 예능부터 시작해 씨네큐브 광화문이나 아트하우스 모모를 제 집처럼 오고 가는 사람들과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그때 그 대사가 참 좋았다든지, 어떤 배우의 연기가 어땠다던지를 떠들고 있으면 참 행복했었더랬다. 쓸데없는 질문과 별 보잘것 없는 이미지들에 대해 떠들다 보면 언젠가 연출이 되고, 작가가 되고, 크리에이터가 될 것만 같았다. 원하던 일들을 하게 된 친구들도 있고, 다른 길을 걷게 된 친구들도 있지만. 갈린 길 위에서도 서로 연락하게 되는 건 나조차 몰랐던 자기소개의 시간들 때문인 것 같다. 왜 고추장이어야 하는지 열변하는 상대의 모습은 학교나 나이, 출신과는 온도가 달라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interest_me_20160702_094936.jpg


생각해보면 팟캐스트를 했던 것도, 누군가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좋아했던 것도, SNS에 자꾸 무언가 올리고 싶어 지는 것도, 사실은 다 그런 감흥을 나누고 싶어서. 결국은 자기소개하고 싶어서. 자기소개받고 싶어서. 뜬금없이 시를 필사한 사진을 보내고, 또 어떤 날은 길을 걷다 본 풍경이 아름다워 찍어 전하고. 그 날 먹은 음식 사진을 굳이 찍어 보내고.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때는 그런 수다가 생의 온전한 목적으로 느껴진다. 좋은 사람과 좋은 것에 대해 떠드는 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완벽한 시간. 태풍이 몰아쳐도, 텐트가 무너져도,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발이 아파 더 이상 걷지 못할 때까지 걸으면서도 재잘거린다. 그러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자기소개들이 쏟아져 나온다. 내 안에 있었던 줄도 모르는 그럴싸한 이야기들이 봇물터지듯. 그럴 땐 꼭 베지 않은 나무의 나이테를 보는 기분이다.



떠들고 싶어 지는 나를 보면 생각한다. “아. 나, 아직 살아있구나” 아직 자기소개가 끝나지 않았구나. 아직 들어보지 못한 근사한 자기소개를 기다리는 일은 포기가 되지 않는구나. 여전히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재밌구나. 떠들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 지금 나의 유일한 희망이구나. 떠들고 싶어 진다는 건 곧 그런 내 안의 생의 기운을 확인하게 되는 것과 같다. 많은 것을 체념하고 타협한 내가 아직 무언가를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아직 그런 일들이 가능하리라 믿고 살고 있어. 시들어버린 것도, 청춘이 지나간 것도, 완전히 무기력해진 것도 아니야' 그래서 힘이 난다.



photo-1470506926202-05d3fca84c9a.jpeg


추억의 질문에서 나의 선택은 된장이었는데, 그것은 아마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굳이 설명하자면 생닭을 치킨에 찍어먹는 느낌이랄까-에 된장에 찍어먹는 습관이 들었기 때문일 거다. 단맛과 짠맛 중에는 짠맛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 단맛에는 쉽게 물린다. 회도 초고추장보다는 간장에 찍어먹는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당신과 하고 싶다. 사소한 취향, 시시콜콜한 경험에 대해. 적어도 난 당신이 된장과 고추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는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할 때 어떤 경험을 늘어놓는지.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삼겹살을 먹는 날에 다시 당신과 떠들고 싶어 지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질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네 꿈은 며칠 남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