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이 믿자. 맞을 거라고

수학을 못했던 이유

by 블블


수학을 잘 못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땐가. 1학기 중간 기말 평균 80을 넘지 못해 ‘미’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던 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을 타고서는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귀여워서 가서 꼭 안아주고 싶은데- 어쨌든 그 날은 대학 못 갈 것처럼 울었던 것 같다. 나의 세계와 우주는 얼마나 좁았는지, 그 좁은 우주에서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그런 것들이 생각나면 새삼 마음이 간지럽다.


정말 못하던 부분은 식을 세우는 부분보다, 세운 식에서 X값을 구하는 과정이었다. 나는 계속 노심초사였다.


‘계산이 틀리면 어떡하지.’

‘식이 잘못 되었으면 어떡하지.’

‘기껏 풀었는데 답이 아니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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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점이 나올 것 같거나, 루트가 나오거나 여하튼 복잡해질 것 같으면 애진작에 식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부터 했었다. 등호 넘어가는데 실수로 부호 안 바꾸면 어떡하지. 뚝심 있게 내가 세운 식을 믿어주지 못했고, 한 줄 두 줄 세 줄 네 줄 늘어나는 계산 과정에 항상 너무 초조해했다. 생각만 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었다. 채점해보면 내가 시험지에 쓴 식이 그대로 해답지에 쓰여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틀림’이었다. 식만 세워서는 답을 구할 수가 없었다.


언어영역이나 사회탐구영역의 객관식 문제들을 좋아했던 건, 보기를 보자마자 O,X가 1초만에 판별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래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내용만 암기하면 정답과 오답이 한 번에 보였다. 틀려도 왜 정답인지 왜 오답인지 이해하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정을 견디는 건 너무 힘들다. 글을 쓸 때에도 이런 습성이 그대로 삐져나온다. 줄거리를 만들고,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계속해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믿지 못한다. 애초에 메시지가 잘못된 건 아닐까. 이런 줄거리와 인물로 괜찮을걸까. 한 줄 한 줄 써내려갈 때마다 ‘과정을 견디지 못하는 나’를 만난다.



글을 쓸 때 뿐이랴. 세상과 만날 때에도,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렇다. 당신이 던진 말을 듣고 할 말을 생각한다. 입을 떼려는 순간, 내가 파악한 당신의 의도가 ‘과연’ 맞을까 겁이 난다. 말하지 못한다. 어색하게 웃고 있을 뿐이다. 답이 있을 텐데, 틀리면 안 될거라 생각하며 나를 얼마나 옥죄는지 모른다. 그럴 때면 식을 세워놓고 계속 불안해하던 중고등학교 수학 시험 시간이 생각난다. 틀려도 다시 풀 시간이 없고, 이 식이 맞을 거란 확신도 없는 채로. 손바닥에 난 땀 때문에 샤프만 미끄러지던, 시험지가 그 땀에 젖어 울룩불룩해지던 그 황망한 시간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와는 별개로 내가 가진 어떤 성정 때문에 괴롭던 시간. 그냥 ‘수학 못한다’로 설명하기엔 결이 다른 내 안의 문제들.




인생이 언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하면, 난 자꾸 수학을 못하던 내가 생각난다. 식을 다 세워놓고도 답을 내지 못하던 나. 식을 세우지 못한 아이와 다를 것이 없던 나. 모니터 위에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내가 할 이야기를 기다리는 당신을 바라볼 때에도. 머뭇거린다.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이 없다면 좋을텐데. 식 같은거 세우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아버렸으면. 답 같은거 찾고 싶지 않았으면.


방법은 ‘맞을 거라고 믿는 일’ 뿐이었다. 재수 생활 때 내내 내가 했던 일은, 새로운 문제를 많이 푸는게 아니었다. 이미 풀었던 문제를 더 불안하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푸는 일이었다. 답이 무엇인지 알고 푸는 문제들은 불안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계속해서 답이 틀리지 않고 나오면, 나는 그래도 조금 더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괜찮을거다. 맞을거다. 답이 틀림없이 나올거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내 불안을 견뎌낼 수 있었을 때, 풀이과정을 꿋꿋이 해나갈 수 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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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번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순간마다 자꾸 수학시험 시간이 떠오른다. 또다시 인생의 승부처를 만났을 때, 그 때에도 샤프를 쥐고 담담히 종이 위에 계산을 해나가길. 그럴 수 있는 담대한 내가 되길 온 우주를 향해 매일 기원한다. 대학생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어느 순간 작가가 되고, 또 어느 순간 당신과 자연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되기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아 불안하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초조한 과정이라도 나를 믿고 식을 세우길. 원래 풀이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니까. 당신의 식은 ‘맞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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