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네가 오늘의 나야.

<라라랜드 LALA Land> 리뷰

by 블블

[스포일러 산발 주의 / 근데 읽고 봐도 스포일러는 아닐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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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를 보고 며칠 앓았다. 지금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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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던 장면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며 home-home으로 돌아간 미아에게 캐스팅 디렉터의 연락을 알려주기 위해 세바스찬이 찾아갔던 장면이다. 굉장한 기회가 찾아왔다는 소식을 미아에게 알렸을 때, 모든 걸 소진한 미아가 말한다. 그리고 세바스찬은 화를 낸다.


아니, 안 갈 거야.

- 왜!!!!!!!

이제 힘드니까.

- 싫어!!!!!!!


난 저 ‘why’와 ‘no’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웠다. 무작정 찾아간 그녀의 고향에서 그녀를 찾기 위해 야밤중에 눌러대는 경적 소리는 그 어떤 차의 클락션 소리보다 사랑스럽다.


‘싫다’는 내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는 단어이지, 누가 대신 말해 줄 수 없는 단어다. 전지적 작가가 아니고서는 남의 입을 빌려 써서도 안 되는 단어다. 근데 그런 말이 세바스찬의 입에서 튀어나왔는데 나는 왜 무너졌는가. 본인 오디션도 아니고 미아가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는데 저렇게까지 화가 난 남자가 난 왜 이다지도 좋은 것인가. 나는 왜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는가. 왜 앓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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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은 정말 외로운 시간이다. 원래 혼자 뭘 하는 걸 정말 싫어라 하던 아이였는데 어쩌자고 글이 쓰고 싶어졌을까. 글쓰기는 죽도록 외로운데. 그래서인지 어디 말할 기회만 생기면 매일 징징거린다. 팟캐스트에서도 주저리주저리. 브런치에서도 주저리주저리. (내가 도깨비라도 되면 이런 벌 달게 받겠지만, 혼자 있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런 아이러니는 인간으로 살면서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그래도 나는 솔직히 글을 쓰는 내가 좋다. 아마 징징거리는 건 관심받고 싶어서. 쨌든 지금은 해보는 데 까지 해 볼 생각이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 것인지, 어떤 장르를 쓰고 싶은 것인지. 어떻게 해야 잘 쓰게 되는 건지조차 모르면서도 일단 카페에 앉아 타자기를 두드린다. 괴롭지만 타자기를 두드릴 때 타닥타닥 소리도 좋고, 커서가 깜빡거리고 있는 걸 골몰히 바라보는 일도 좋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남지 않도록 나 자신을 수렁에 빠뜨린 것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계획한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 그래 글 쓰는 일 밖에 할 게 없잖아.라고 스스로에게 핑계 댈 수 있도록.


글이 좋다는 말 외에 심장이 두근대는 일이 씨가 말랐는 걸. 난 게을러서 매일 출퇴근도 싫고, 성격이 괴팍해서 의견 조율도 잘 못할 거고, 돈 많이 벌어봤자 내가 이건희보다 더 벌 일도 없고. 돈을 많이 벌 수도 없다. 어쩔 수 없다. 팔자다. (보았느냐, 나의 정신승리)


하지만 남들한텐 아니다. 그냥 입만 산 루저다. 왜냐하면 나는 등단도 못했고, 입봉도 못했다. 언시 탈출도 못했다. 그렇다고 책을 낸 것도 아니다. 진짜 입만 살았고, 매일 복권만 사는 것과 다를 게 하나 없는 빈둥대는 골빈년일 수도 있다. 결과 없는 과정은 식만 세우고 답은 못 고른 수학 문제와 똑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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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런 ‘과정’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과’를 의심하지 않는 친구들이 정말로 많이 필요하다. 결과를 장담할 순 없어도, 지금 네 글이 좋다고 한마디 해주는 사람들이 정말로 큰 힘이 된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으니까 이럴 때는 믿음의 힘뿐이다. 스스로 재능에 대해 의심할 때, 본인 스스로보다 더 큰 믿음을 보여주는 파트너들. 할렐루야. 빈말이라도 좋으니 다음 글이 보고 싶다든지, 네가 하고 있는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든지, 네 글은 정말 좋다든지, 이걸 요렇게 바꾸면 훨씬 좋아질 것 같다든지. 이런 말들을 해주는 눈먼 친구들이 필요하다. 팔은 될수록 안으로 아주 잘 굽고 고슴도치라도 예뻐해 주는 엄마 마음을 가진 친구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살면서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걸 바라는 나조차도 남에게 관대하지 않으니까. 나 역시 내 글을 선뜻 보여주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다. 게다가 용기를 내어 “내 글 한 번 볼래?”라고 말했을 때 어떤 대가 없이 성의껏 읽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부담스럽게나 여기지 않으면 다행이다.


근데 그 하늘의 별이 짠하고 내려와 눈 앞에서 “왜 안 해! 해! 계속 해!” 채찍질하고 있잖아. 내가 의심하고 홀대하는 내 재능을 격려하고 응원해주고 있잖아. 지친 사람한테 위로를 건네지 않고 화를 낼 수 있는 건 이미 목도한 반짝임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상대의 가능성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난 그 장면 보면서 울었다. 그때부터는 계속 울었다. 엄마. 부러워. 본인도 의심하는 ‘재능’을 믿어주는 타인이라면, No라는 말. 저럴 때 한 번쯤 대신 사용해주는 것 정도는 쿨하게 용인해 줄 의향이 있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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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을 보지 않고 다시 대학에 복학해 변호사가 되어도, 행복한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6년 동안 초라한 자기 자신을 견뎌내며 고집을 피운 사람인데, 뭐든 못하겠는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별로 겁날 게 없다. 그러니까 배우로서 성공한 미아가 부러운 건 아니다. (음... 부러운가.....부..ㅂ.)

하지만 미아는 이후 어디서도, 자신의 반짝임을 알아봐 준 세바스찬을 만나지는 못할 거다. 이미 그때의 자신은 몇 년 전의 자신이어서 지금과 같을 수 없으니까. 변했으니까. 지금의 열정은 그때의 열정과는 다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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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부러웠던 건 ‘그때 그 순간. 나의 반짝임을 알아봐 준 사람을 만난 것’ 그래서 ‘함께 빛나는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것’ 그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 당신으로 인해 성장한 나로서, 당신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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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에선 놀랍게도 신은 공평해서, 누구나 마음속에 그런 사람 한 명 정도는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꾸는 꿈이 고통인지도 모르고오! 제 살 파먹는 줄도 모르고오! 신나서 천방지축 행복할 때, 그때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한 명 정도. 다들 있잖아. 시간이 흘러 그 꿈 때문에 너무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이젠 다 스러진 빛을 기억하며 일으켜 세워주는 친구. 사랑. 꼭 그 꿈이 배우나 작가는 아닐지라도. 꼭 라이언 고슬링처럼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는 사람은 아닐지언정. (괜찮다. 나도 엠마 스톤은 아니니까.) 아직 정말 놀랍게도 없었다면, 신을 한 번 더 믿어 보자. 찾아올 거라고. 흑흑. 눈물을 닦는다. City of stars- 이 도시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그때의 우리. 지금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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