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 Arrival> 리뷰
*스포주의
이야기는 ‘완성’과 함께 ‘시작’된다. 이것은 나에게 참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첫 씬을 시작할 때 이미 내 머릿속에는 마지막 장면이 그려져 있어야 했다. 그러니까 대본을 쓴다는 건 지금까지의 내가 겪은 ‘쓰기’ 경험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에세이, 리포트 하다못해 내 감정으로 떡칠을 한 싸이어리를 쓸 때에도 문장은 쓰이면서 태어났다.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는 동시에 글자와 문장들이 생겨났다. 물론 머릿속으로 대략적인 개요를 잡긴 하지만, 그래도 첫 문장을 쓰면서 마지막 문장까지 생각하고 쓴 글은 없었다. 에세이나 리포트를 쓸 때는 ‘시간의 축’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한 줄을 채우고, 그다음 어떤 문장을 쓸 것인지 앞 문장과 연결시켜 순차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대본은 달랐다. 첫 씬을 쓸 때, 이미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영화 <말아톤>의 발단부. 자폐증을 앓는 주인공 초원이는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얼룩말을 보고 있다. 시작할 땐 별 의미 없는 장면이지만, 이후 이 장면 하나로 초원이의 행동은 개연성을 갖게 된다. 얼룩말에 대한 초원이의 선호가 얼룩무늬 옷을 입은 여자를 함부로 만진다거나, 얼룩무늬만 보면 쫓아간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미 작가는 동물의 왕국을 보고 있는 초원이를 초반부 씬에 배치할 때,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모든 것을 계산하고 있어야 한다. 앞으로 벌어질 사건과 연관이 없다면, 애초에 얼룩말을 좋아하는 초원이 역시 필요가 없어진다. ‘씨 뿌리기’라고 표현하는 이 작업은, 시간을 초월해야 하는 작가의 고충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의 시작-끝을 한 번에 관통해서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
2차원적인 글쓰기만 하던 나로서는 대본을 쓰면서 처음 접한 ‘시간 초월’에 적잖이 당황했다. 물론 지금도 막막하다. 그동안 써오던 글쓰기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접근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A가 일어날 때 이미 A가 일어난 이후의 일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야기의 시작과 동시에 끝을 알고 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컨택트(Arrival)를 보면서, 자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헵타포드들은 시간을 인지하는 방식이 인간과 전혀 다르다. 시작과 동시에 끝을 본다. 원인과 결과를 순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에 이해한다. 비선형적으로 시간을 이해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그들의 문자에도 그대로 드러나 3차원 이미지와 같은 표의문자를 사용한다. 앞도 뒤도, 명사와 동사도 구분되지 않는, 어순 따위 없는 이미지 자체로 완성된 의미를 갖는 언어.
대본을 계속해서 써나가는 건, 내게는 헵타포드어를 배우는 과정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극 이야기를 짜는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시간의 법칙을 거스르는 훈련을 해야 하니까. 첫씬을 쓸 때 이미 마지막씬을 알고 있어야 하니까.
영화의 주인공인 루이스는 결국 헵타포드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시작과 동시에 끝이 보이는 시간관을 경험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이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언젠가 당신과 이별하고, 아파할 것을 알면서도 지금 당신의 손을 잡고 입 맞춘다는 건 어떤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작가들도 자신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결국 어떻게 될지 다 알지만, 다 알면서도 쓴다. 정해진 결말을 위해 달려간다. 모든 소도구, 인물의 행동, 사건의 전개가 이야기의 완성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끝을 향해서 치닫는다. 시작점에서 이미 완결점은 정해져있다. 하지만 점과 점을 잇는 선분 없이, 주인공의 여정 없이 이야기는 굴러가지 않는다. 결국 작가는 하얀 백지 위에 '씬 1.'이라는 글자를 쓰고. 그가 겪어야 할 모든 위기를 늘어놓아야만 한다.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 작가는 없다.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것이 이야기. 삶. 이란 생각이 든다.
테드 창이 쓴 소설의 원제가 ‘Story of your life’인 것이 유독 맘에 그림자를 늘어뜨린다. 삶을 이야기로 풀어낸다는 건 뭘까. 끝을 안다고 해서 시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말 끝을 몰라야만 시작할 수 있는 걸까? 이야기는 ‘완성’과 함께 ‘시작’된다. 이야기를 쓰는 나로서는, 결말을 알고도 오늘 시작하는 당신을 응원할 수밖에 없다. 나와 함께 삽질하는 당신. 아름답다. 죽을 걸 뻔히 알고도 전진하는 장수. 곧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배낭여행자.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돌을 올리는 시지프. 여정의 끝을 알고도 여행을 시작하는 당신. 나는 그런 바보 멍청이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