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이 잡아 준 삶의 편집점

영화 <문라이트> 리뷰

by 블블

어떤 장면들은 잊히지가 않는다.


대학교 1학년 때 갔던 MT였던 것 같다. 대성리인지 강촌인지 잘 기억은 안 나고. 우리가 묵던 숙소 앞에 계곡이 흘렀는데, 도착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 몇몇은 공차기를 하고 몇몇은 물수제비를 뜨고 놀고 있었다. 나는 물수제비 그룹에 있었다. 물수제비 뜨는 법을 배워보겠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해도 내가 던진 돌은 한 번만 튕기고 가라앉았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아해들이 평평하고 납작한 돌을 찾으라고 했다. 어떻게든 돌을 물 위에서 튕겨내고 싶었던 나는 쭈그리고 앉아 돌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어떤 애가 내 옆에 같이 쭈그리고 앉아 돌을 찾았다. 그러다 내가 제법 던질만하게 생긴 돌을 발견한 순간. ‘찾았다!’는 신난 마음에 갑자기 고개를 들었는데 옆에서 같이 돌을 찾던 그 애랑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그 아이의 온 얼굴이 웃고 있었다. 순간 따뜻한 느낌에 잠시 멈칫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통이 넓은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었고, 그래서 바윗덩어리들 사이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넘어질 것 같아서 계속 조심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들었더랬다.


벌써 10년이 지났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그 아이의 표정과 눈빛은 잊히지가 않는다. 왜 그 아이는 돌을 안 찾고 나를 보고 있었는지, 왜 그렇게 환하게 웃고 있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사실은 다른 쪽을 보고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을 하다 우연히 웃은 타이밍이 겹칠 수도 있었겠지. 순전히 내 기억의 왜곡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사랑스럽다’가 가득 담긴 눈빛이 어떤 눈빛인지는 그날 이후로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능력의 시작이 그 날이었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 아이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야 이미 훌쩍 변해버린 지 오래지만 그때 느꼈던 따스함은 앞으로 금수강산이 몇 번을 더 변해도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살다가 겪는 어떤 장면은 너무 강렬해서 절대 잊히지가 않는다.




내게 영화 <문라이트>는 그런 장면들의 모음집이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초목표 달성을 위해 뛰어가는 영화도 아니고, 해결해야 할 갈등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다.


삶 전체라는 축 위에서 샤이런이 꼽은 ‘잊히지 않는 장면’들만을 모아 편집한 느낌이다. 전체 영화가 ⅰ.Little / ⅱ.Chiron / ⅲ.Black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 생각한다. 삶의 잊히지 않는 장면들은 뜬금없이 뛰어 들어오니까. 어떤 특정한 기간보다는, 인생 전반을 전체 x축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때로 지루할 수도 있고, 파트 간의 긴밀한 연관성도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띄엄띄엄 연결된 장면의 모음이 샤이런의 삶을 이해하는 데 가장 진실한 접근법이 될 수도 있음을, 영화는 증명해주고 있다.


파트 1에서는 소년이었던 샤이런이 우연히 알게 된 아저씨 후안에게 수영을 배우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치 걷는 법을 완전히 새롭게 배우는 것처럼, 물결이 카메라 렌즈를 그대로 때리는 와중에 자신의 두 팔과 다리를 움직여 헤쳐나가는 소년 샤이런의 모습이 불안 불안하게 스크린을 채운다.


마침내 혼자 힘으로 바다를 나온 샤이런에게 후안은 “넌 언젠가 뭐가 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해. 남들이 대신 결정하게 해선 안돼”라고 말한다. 대사 자체도 멋지지만, 후안의 진심이 담긴 말에 작은 샤이런은 위안을 받게 된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마약에 취한 엄마 밑에서 자라는 소년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바로 이런 한 장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옛날에 후안이라는 아저씨가 있었어. 마약을 팔던 아저씨였는데 내게 수영을 가르쳐줬지.”라는 이야기로는 절대 요약될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 ‘장면의 힘’이 있는 것이다. 수영을 하고 나와 바닷바람에 몸이 마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고, 혼자 처음 수영을 해봤기에 설레기도 했을 거고, 그 성취를 지켜봐 준 후안 아저씨가 옆에 있었을 거다. 그 모든 게 어우러져, 작은 리틀이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한 장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어지는 파트 2, 3에서도 타인의 애정을 받는 샤이런의 ‘삶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케브에게 사랑받는 샤이런. 한 평생 약에 취해 자신을 괴롭히던 엄마에게 “너는 날 사랑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난 널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듣는 샤이런.


후안이 어떻게 죽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마이애미에서 애틀랜타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게 되는지, 그 과정에 관한 과감한 생략에도 불구하고 샤이런이 편집한 그의 인생의 장면들로 이미 우리는 온전히 그에게 공감할 수 있다.




후안은 파트 1에서 자신이 블루로 불리게 되었던 계기를 자신의 삶의 한 장면으로 꼽는다. 달빛을 받고 신나서 뛰어다니던 후안에게 어떤 모르는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달빛 아래에선 검은 아이도 파랗게 보여. 앞으로 널 블루로 불러야겠다"


"네 삶의 장면은 무엇이니? 어떤 장면이 잊히지 않니?"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장면들을 꼽게 될까.

내게 잊히지 않는 삶의 장면들과 샤이런이 꼽은 삶의 장면은, 같은 기준으로 편집되었다. 자르고 잘라내 보관해야 할 최소한의 삶의 장면이라면 결국 그것은 ‘사랑받았던 기억’ 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달빛이 만들어 준 파란 시간 속에서의 장면. '사랑받는다'는 느낌으로 가득 찬 농축의 시간이 남을 수밖에.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지금도 좋아하는-드라마인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 희진에게 말했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어요”라고. 하지만 샤이런은 삼순에게 말할 것이다. 내 삶을 지탱해준 것은 결국 그 장면들뿐이었다고. 흑인이고, 가난하며, 동성애자인 자신이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사랑받았던 기억 때문이라고.


사람은 추억만으로도, 한 장면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 오늘이 그 한 장면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흔적을 남겨야만 한다. 어떤 날 어떤 순간이, 훗날 내 삶의 ‘장면’이 될 수 있을지 지금은, 아직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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