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말 히든카드 맞아?

영화 <히든 피겨스> 리뷰

by 블블

뭐니 뭐니 해도 ‘히든 hidden’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카드 card’아닌가.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항상 그렇게 집착하던 북산의 히든카드라는 슬로건같은. ‘요건 몰랐지?’ 식의 승패를 결정짓는 한 수를 의미하는. 동시에 히든카드라는 관용어와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는 환대이다. 늘 사람들은 이 숨겨져 있던 ‘카드’가 드러날 때 환호하고 열광했다. 아니 이런 생각지도 못한 묘수가?! 이제 우리 이길 수 있는건가!


그런 지점에서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는 단어의 조합부터 생소했다. 낯선 어구였다. 숨겨진 수치? 숨겨진 인물? ‘히든카드’를 들었을 때처럼 함께 떠오르는 만화라든가, 이미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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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져 있음이 당연한 일들이 있었다. 내가 자라는 동안, 아빠와 오빠는 집에서 속옷만 입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내가 샤워를 막 마치고 나와 아주 잠시라도 속옷만 입고 돌아다닐라치면 엄마와 할머니는 야단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는 “왜 나만 혼내?”라고 말할 수 없었다. 등짝스매싱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파우더룸, 드레스룸 따위 없는 우리집. 젖은 욕실 바닥에서 긴팔 잠옷을 입고 나오는 것도 하나의 불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옷을 다 갖춰입고 나와야 했다. 오빠와 아빠는 에어컨 없는 여름. 사각 트렁크 팬티만 입고 잘도 돌아다녔다. 아마 우리집 남성들은 몰랐을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와 내가 겪어야 했던 불편함을. 그것은 아주 당연하게 숨겨져 있는 불편이었다.


학교에서 생리대를 빌리려고 하면 여고임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남자 선생님들이 지나다니지 않을까. 조용히 친구들에게 물어야했다. 역시 나는 “근데 왜 우리 조용히 말해야해?”라고 말하지 않았다. 초경을 시작할 때부터 그건 당연한 일들이었다. 나중에 대학에나 와서야 생리대를 거리에 매달아놓은 여성운동 시위를 보며 깜짝 놀랐다. 빨래같이 널려있는 생리대가 그렇게 낯설 수가 없었다. 아 저렇게 밝은 대낮에 거리에 내놓아도 되는 물건이구나. 하지만 거리에 매달린 생리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냉담했다. 굳이 왜 드러내려고 하는건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당연히 숨겨져 있는 것들은, 아무래도 등장과 함께 박수갈채를 받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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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캐서린은 우주업무부서에 출입하게 된 최초의 흑인이었다. 당연히 우주업무부서 사무실은 백인만 출입했고 근처에 COLORED TOILET(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은 없었다. 때문에 캐서린은 자신이 사용 가능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왕복 40분이 걸리는 거리를 하이힐을 신고 무릎길이에 스커트를 입고 뛰어다닌다.


하지만 캐서린은 이러한 불편함에 스스로 적응한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백인 남성 경찰의 이유 없는 검문에 시달리며 살아왔기에. 아주 오랜 시간동안 흑인 전용 좌석에 앉았고, 흑인 전용 화장실을 사용해왔기에. 당연히 숨겨져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 부당한 처우에 대해 그 어떤 시정조치도 요구하지 않으며, 그저 열심히 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서도 계산을 해나갈 뿐이다. 그렇게 영화 내내 우리의 캐서린은 서류 뭉치를 들고 계속 계속 뛰어다닌다.


영화가 절정에 치닫는 순간은 이 숨겨져 있던 불편이 표면 위로 마침내 드러났을 때다.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비를 홀딱 맞아 꼴이 엉망이 된 캐서린에게 ‘필요 할 때 왜 늘 넌 없느냐’며 화를 내는 상사. 결국 캐서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숨겨진 불편을 터뜨린다. “화장실에 다녀왔어요!”


박수갈채는 없다. 적막하게 내려앉은 무거운 공기가 사무실을 채울 뿐이다. 히든카드가 드러났을 때의 환대와는 극명하게 다른 반응이다. 정말로 은폐되고 숨겨졌던 것들이 드러나면 일단 사람들은 불편을 느낀다. 원래 세계의 안정감이 무너지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래서 진짜 ‘히든-’(숨겨진 것들)은 등장과 동시에 멍투성이가 된다. 드러남과 동시에 꾸지람과 등짝스매싱, 너 왜그러냐는 질책 혹은 하던대로 하자는 설득이 돌이 되어 날아오기 때문이다. 환대는 꿈도 꿀 수가 없다. 절대로 히든카드(환대 받는 영웅)가 될 수 없는 비참한 숙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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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히든’이라는 형용사가 내 마음에서 걸리적거렸는지, 히든카드에 대한 어색함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 영화를 곱씹다 보니 알게 되었다. 히든카드는 엄밀히 말해 히든(숨겨진) 카드가 아니었다. 사실 히든카드의 조건은 ‘드러낼 수 있는 무언가’였음을.


결국 ‘짠!’ 하고 그 존재를 밝혔을 때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아야만 우리팀 최후의 보루 ‘히든카드’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제 아무리 미지의 히든카드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혹은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서만 상상한다. 물음표가 그려진 깜깜한 종이 박스 안이라도. 상상할 수 있는 것만을 상상한다.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가 누가 될지 모두들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그 사람이 백인-남성이 아닐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듯이. 그래서 모두가 히든카드를 알게 되는 순간. '오! 이 사람이 처음으로 우주를 가게 될거야!' 함께 환호 할 수 있었던 것임을.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결코 히든'카드'가 될 수 없었던, 그 등장에 박수갈채를 받을 수 없었던 흑인 여성들이다. 최초의 우주비행사나, 나사의 정직원이 될 수 없었던, 엔지니어링 수업을 듣기 위해 재판장에 서야하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이 영화에 우리에게 익숙한 ‘히든카드’라는 제목은 절대로 붙일 수가 없었던 거다.


숨겨짐이 당연했던 흑인 여성들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이 영화의 두둑한 배짱과 유쾌함을 사랑한다. 영화는 카드로 쓰이지는 못했지만, 실제로 존재했던 그녀들의 삶을 꿋꿋하게 돌아 보고 있었다. 영화를 통해 배운 교훈은 이것이었다. 히든이란 말에 섣불리 속아서는 안된다. 정말로 숨겨진 것들은 히든이란 수식어로도 드러날 수 없다. 항상 그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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