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페인 감독 <사랑해 파리> <사이드웨이> 속 인물들을 만나고
너? 나랑 닮았다.
상황 1.
일본어를 배우겠다하니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왜?” 괄호 치고 ‘지금 굳이 일본어를?’이 생략되어 있다. 납득할만한 적당한 대답을 찾는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는 거짓 아닌 거짓으로 대답을 둘러댄다. 그제야 사람들은 조금 수긍한 표정을 내보인다. 이어진 후발공격. “자격증은?” 넘어갈 재간이 없다. 그냥 열심히 구몬일어를 푼다. 왜냐고 묻는 덫에 걸리면 이유를 찾아내는데 시간을 허비할 것 같아서. 그러다 일본어 공부를 그만 둘 것만 같아서.
파리를 주제로 거장 감독들의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에서 알렉산더 페인은 파리에 가는 것이 일생의 소원인 캐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녀는 미국에서 우편배달부로 일하며 2년 동안 프랑스어 성인반 수업을 수강해왔다. 조금씩 돈을 모아 마침내 꿈의 도시 파리에 도착한 그녀.
Est ce que vous savez ou est bon restaurant a Paris? (어느 음식점이 맛있어요?) 드디어 실전의 시간. 캐롤은 야심차게 그동안 갈고 닦은 프랑스어를 사용해 현지인에게 질문을 던진다. 질문을 받은 미용실 가게 주인은 그녀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Do you like Chinese food? (중국 음식 좋아해요?) 영어로 말이다. 그녀의 엉성한 프랑스어 억양이 단숨에 탄로 나고야 만 것이다. 아무리 프랑스인들이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이 높다 한들 이 정도 세계시민의식은 갖추었다. 관광객에겐 만국공통어 영어로 상대할 여유. 그녀는 뭐 하러 회화 학원은 다녔을까. 그 돈을 아껴 여행경비에 보탤 일이지
.
상황 2.
“언니 걔랑 아직도 페이스북 안 끊었어? 빨리 끊어. 남들이 보면 언니 불쌍하게 본다고. 난 헤어지면 그 날 바로 다 끊고, 받은 선물도 다 갖다 버리는데. 안 그럼 더 힘들어지잖아 .” 우연히 내 계정으로 로그인 된 페이스북에서 내 전남친의 소식을 발견한 친구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괄호치고 ‘대체 왜?’를 생략한 표정으로. 조금 걱정된다는 얼굴로. 내 맘 상할까봐 본인의 과거 연애사까지 들춰내가며. 역시 적당히 답할 말이 없어 얼버무린다. 이래서 스마트폰 구경하게 비밀번호 막 풀어주는게 아닌데. 구남친 sns 몰래 훔쳐보다 딱 걸렸다.
2004년을 알렉산더 페인의 해로 만들었던 작품 <사이드웨이>에서도 또 한 명의 어리석은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남자 주인공 마일즈다. 자신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줄 출판사를 찾기 위해 에이전시를 전전하는 고등학교 문학 교사 마일즈. 돌아온 싱글남보다 홀아비라는 표현이 훨씬 잘 어울리는 이혼남. 영화 <사이드웨이>는 마일즈의 부질없는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아내와의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사놓았던 와인, 61년산 샤토 셰발 블랑은 이혼남이 되어 마시지도 버리지도 못하고 찬장 속에 보관 중이다. 그는 아직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전처였던 빅토리아와 재회하여 함께 와인을 마실 수 있을 거라는 부질없는 미련.
더 가치 있게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와인에 조예가 깊은 새로운 마야와 함께 새로이 데이트를 할 때 내놓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홀로 지내시는 어머니의 생일날 와인을 들고 찾아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결국 영화의 막바지 오랜만에 본 전처의 재혼과 임신 소식에 마일즈는 그 길로 와인을 집어 들고 아무 카페테리아에 들어간다. 61년 산 샤토 셰발 블랑을 부어 마신다. 와인글라스가 아닌 탄산음료 종이컵에, 고급 치즈 대신 패스트 푸드를 곁들여서.
알렉산더 페인이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이처럼 연방 헛발질을 하는 루저들이다. 이제 와서 일본어를 배운다며 들쑤시고 다니는 내 모습과 닮았다. 여전히 옛 연인을 페이스북 친구목록에서 차단하지 않은 나와 닮았다. 어디 살면서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하나라도 있었나. 나는 제대로 된 답은 찾지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일본어 학원을 등록하고 밤에는 이불 속에서 하이킥이나 하다 잠이 든다.
알고 있다. 사실 죽을 때까지 일본어 한 번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다. 구 남친은 이제 곧 나보다 어여쁜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별 수가 없다. 빠지지 않고 카페에 자리잡고 앉아 학습지를 풀고, SNS에 뜨는 오래된 전 연인의 소식을 담담히 바라본다. 달리 뭐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이렇게 시간을 채워가며 새로운 깨달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구름판을 설치하는 페인의 따뜻함
일본어를 쓸 일이 생기고, 떠난 그가 돌아오는 것보다 더 어려운 확률이겠지만, 만약 살아생전에 알렉산더 페인을 대면할 일이 생긴다면 일본어를 배우고 헤어진 이의 소식을 염탐한다는 사실을 부러 숨기진 않을 것이다. 부끄럽고 남루하여 내 주변 관계에서는 숨겨오던 행동들도 거침없이 내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알렉산더 페인은 오히려 이런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것이다. 끝까지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근거 없는 확신이 든다.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내 삶 역시 따뜻하게 바라봐줄 것이라는 확신. 페인은 인물들의 부질없고 쓸모 없는 행동을 방치하지 않는다. 그들이 발을 구를 수 있는 구름판을 다시 만들어준다.
먼저, <사랑해 파리> 프랑스어의 쓸모는 그녀의 내레이션을 통해 생겨난다. 비록 파리에서 멋지게 실력을 뽐내진 못했을지언정 여행을 다녀 온 뒤 그녀는 프랑스어로 여행기를 쓰고 읽는다. 영화는 자신이 쓴 프랑스어 여행기를 발표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통해서 시작된다. 만일 그녀가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영화는 시작될 수조차 없다. 굳이 미국인의 서툰 프랑스어로 영화를 끌고 가는 고집에서 감독의 의도는 분명히 전달된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힘.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의 소리를 글로 담아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읽기까지. 그녀에겐 프랑스어라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언어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용기를 가질 수 없었던 건 아닐까. 감독은 캐롤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내게 하고 그 자신이 가장 귀 기울여 그 이야기를 들었다.
61년산 샤토 셰발 블랑 역시 무용지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미련 때문에 와인 개시를 망설이는 마일즈에게 마야는 말한다. 와인을 따는 그 순간이 곧 축제의 순간이라고. 마일즈가 평생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청승맞게 삶을 마감하지 않을 거라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드는 건 그 때부터다. 결혼 10주년에 전처인 빅토리아와 와인을 함께 하지 못했어도 괜찮다. 꼭 처음의 의도대로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는 실패자가 아니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예상치 못했던 의미들이 생겨난다. 셰발 블랑을 통해 마일즈는 이미 마야와 교감했다. 그들은 통하였다.
그래서 결국.
알렉산더 페인은 인물들을 얼간이처럼 보이게 하던 대사와 행동들을 활용해 마침내 그들을 행복의 나라로 인도한다. 이루려던 목표에 가 닿지 못한 허망한 노력들이 결국엔 삶의 풍성한 의미를 배워가는 디딤돌이었던 셈이다. 결말을 위해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온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페인의 명민함과 재치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UCLA졸업작품전시회 6개월 만에 스튜디오와 계약을 따낸 이 천재감독이 루저들의 인생을 굽어 살펴 애정을 담아내니 루저인 나로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까 미련하게 와인을 아껴둬도 괜찮다. 생뚱맞게 외국어학원을 다녀도 괜찮다. 때로는 지금 당장 써먹을 곳 없는 보장받지 못할 노력과 감정의 소비라도 괜찮다. 무용(無用)의 시간들도 정교한 시계 속 톱니바퀴처럼 어느 순간 맞아 떨어져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테니까.
알렉산더 페인을 닮고 싶다. 온갖 미련함과 절뚝거림의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주는 그의 섬세함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 하나 대사 하나에서 작품의 의미를 찾아내는 글을 쓰고 싶다.
Everything happens for the reason.
결국 그 모든 것이 삶의 단계였다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을 찾아가는 여행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