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언제 처음 불온해졌나

영화 <불온한 당신> 리뷰

by 블블

언제 알았을까. 세계가 온당하지 않다는 걸. 나는 내가 바라는 것만큼 마땅히 옳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당신은 당신의 불온함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을까.


일찍 도착한 보습학원에서 누군가 두고 간 새 샤프를 몰래 숨겨 들고 나왔을 때였을까. 머리가 하얗게 센, 허리 굽은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도 자리를 양보하지 않게 됐을 때인가. “아. 그냥 사” 막무가내로 가격을 깎는 엄마가 아닌, 생판 처음 보는 시장 아저씨 편에 서게 되었을 때인가.


나는 언제 처음 불온해졌나.


‘7반에 걔랑 얘랑 그렇고 그렇다면서’라는 뒷담화를 그냥 묵묵히 듣고 있을 때였나. 차마 내가 그랬다고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서 친구 뒤로 숨어버렸던 때였나. 네 어두움에 질식할 것 같아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모른 척했을 때였나.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길을 걷다 이유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을 때였을까. 남들 다 알던 세상을 나 혼자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 그 사실조차 서러워 왜 아무도 내게 미리 잔인하게 굴지 않았을까. 내게 다정했던 사람들을 애써 원망하던 그런 날들 중 하루였을까.


당신은 언제 처음 불온해졌나.


영화 ‘불온한 당신’을 보았다. 영화는 바지씨라 불리던 성소수자 ‘이 묵’님의 인터뷰로 시작해 서울시 인권선언 선포 현장, 동일본 대지진 이후 레즈비언 커플의 사정, 퀴어 퍼레이드 현장의 모습 등이 영상의 주를 이룬다.


긴밀한 구성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동성애자로서 지금 여기 서울에서의 삶’을 대리체험해볼 수 있다. 내가 지난 몇 년간 보아온 서울 도심의 모습이 날 것 그대로 담겨 있다. 정제되지 않았고, 매우 시끄럽다. 어느 순간 이야기 쫓기를 포기하고, 흘러나오는 영상을 바라보면 ‘온당하다’ ‘온전하다’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얕은수인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해는 쨍쨍. 바람은 산들바람. 나무는 이파리 가득 초록. 가족들은 싱글벙글.

나는 이제 그런 그림은 다시는 그릴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은 그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당신의 세상을 그려보세요. 그 그림은 어떤 그림입니까.

영화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거칠 것 없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동성애 혐오자들을 비춰주는 장면들을 쫓다 보면 알게 된다. 불온함을 가리려는 노력이 얼마나 사람을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지. 당신은 정말 불온한 적이 없었는지. 아직도, 엄마와 아빠가 손을 잡고 웃고 있는 그림이, 해는 빨갛거나 노랗고, 계절은 항상 봄이거나 여름인 그 그림만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는 것인지. 왜 그렇게까지 당신의 불온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왜 그런 그림만이 정답인지 정말 당신은 1도 궁금하지 않다는 말인지.


누구나 자신이 믿던 세계가 깨지고, 나 자신의 불완전함 때문에 두려움에 떨던 순간들이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에서 멀어지던 과정들. 그런 당신을, 당신의 불온함을 드러내지 않으면, 세상은 정말 판에 박힌 그림처럼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바르지 않음'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용기를 존경한다. 불온할지언정, 이것이 나의 진실이었다는 담담한 서술보다 더 좋은 ‘실화’는 없다.


나보다 먼저 세상의 부당함을 맞닥뜨리고, 나보다 더 많은 시간 절망 속에 살아왔을 사람들에게 당신의 불온함이 틀렸다고 말하지 말자. 불온한 당신이 지금 여기 존재하기에 나는,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평생 알 수 없었던 세상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당신은 언제 처음 불온해졌나.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것이 궁금하다. 진실은 언제나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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