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건 그저 우연
[2016년 1월 29일에 작성한 글]
1.
요즘 왼손잡이에요? 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잔뜩 거품을 낸 우유를 시럽이나 샷에 부을 때, 혹은 완성된 음료 위에 휘핑크림을 올릴 때. 아니요. 오른손잡인데. 근데 휘핑 돌리는 방향이 왼손잡이 방향인데? 피처도 계속 왼손으로 잡잖아요.
2.
예전에 자주 들락날락하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상깊었던 염장글을 본적이 있었다. 연필을 칼로 깎는 남자친구를 보면서, 연필을 잘 깎네. 생각한 뒤 5년이나 만났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있어서 행복하단 내용인 게시글이었는데.
3.
29년이나 모르던 내 모습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나는 양치질을 왼손으로 한다. 왼손에 수화기를 드는 게 편하고, 핸드백도 왼쪽 어깨에 맨다. 어릴 때 원래 왼손잡이였는데 억지로 오른손을 쓰게 했다던 엄마 말도 생각났다. 스물 아홉 해나 이 몸뚱어리로 살았는데 아직도 모르는 게 있어서 신기했다. 생각보다 왼손이 불편하지 않았다.
4.
그 때 우연히 손잡이가 왼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왼쪽으로 돌아간 손잡이 덕분에 왼손을 먼저 뻗쳐 피처의 손잡이를 잡았을 뿐이다. 연필이었다면 아무리 내 왼쪽에 있었다 하더라도 오른손으로 잡아쥐었겠지. 피처는 처음 잡아보니까. 손잡이가 오른쪽 방향으로 놓여져 있었다면 오른손으로 잡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는 평생 오른손으로 스팀우유를 붓지 않았을까.
5.
방향성이 생기게 되는 계기는 우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내가 가진 어떤 방향성을 너무 당위적으로 생각하진 말 것. 그리고 어쨌든 하던 일을 하는 것보다 새로운 일을 해볼 때 나도 몰랐던 나를 알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29년을 살아도 몰랐으니 아마 그만큼 더 살아도 나 자신에 대해 모를 수 있다는 것. 평생 다 알고 죽진 못하리라는 것-그게 아무리 나 자신이라 하더라도- 그 중 제일은 염장글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승화하는 놀라운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
6.
사는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요.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필요하면 써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