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낭'자는

by 블블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 근교라면 적절한 거리였겠지만 강원도 고성에 다녀왔다. 차를 렌트했다. 운전은 내가 하지 않았다. 차가 막히는 바람에 애인의 집에서 우리집까지 약 두시간이 걸렸고, 우리집에서 가진해변까지 다섯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해변에 도착했을때는 오후 세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네비에서는 가평 휴게소가 곧 나온다 했건만, 거의 두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휴게소를 밟았으니까.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더 달려야했으니까.



작년에도 당일치기 여행을 강원도 강릉으로 갔었다. 그 때에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일산에 사는 친구는 그곳에서 가까운 터미널에서 따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아침 8시 50분 버스였는데, 우리는 한시 반쯤 어딘가의 휴게소에서 만났다. 꼭 수학여행 갈 때 절친 옆 반친구랑 만나서 휴게소에서 논 것처럼, 화장실에 같이 갔다가 각자의 버스에 다시 올라탔다. 그리고 오후 두시가 다 되어 강릉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다시 만났었다.



이 바보같은 짓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



작년, 강릉에서는 일단 주린 배를 채우러 택시를 타고 막국수집으로 향했다. 소문난 막국수집의 막국수는 정말 맛있었다. 맛있어야만 했다. 맛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침 일곱시에 집을 나와 올라탄 버스에서 오후 두시가 넘어 해방되었으니 뭐든 맛있을 수 밖에.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콜택시를 불러 타고 안목해변 카페거리로 갔다. 산토리니 카페에 가 드립커피를 주문하고, 2층 테라스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자동차의 향연을 애써 외면하며 커피를 기다렸다. 주문한 베이커리와 커피가 나온 후에는 최대한 수평선에 시선을 집중하려 노력했다. 사람들과 자동차로 정신없는 해변가는 자체 편집.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역시 바다는 바다였고, 어쨌든 서울에서 맡을 수 없는 짠내에 마음이 들떴고, 파란 하늘과 부서지는 하얀 파도는 또 어쨌든 고속도로 위에서 속절없이 오도가도 못한 채 앉아있던 여섯시간의 노고를 치하해주는 것이었다.



겨우 식사와 커피 한잔을 하고 등대 쪽으로 나 있는 방파제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안목해변은 해수욕보다는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롱비치원피스보다는 짧은 핫팬츠에 미니백을 맨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의 바보짓을 증명할, 인스타에 업로드할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모래사장 뒤편에 놓여있는 흔들그네에 앉아 이문세의 노래를 들었다. 친구의 선곡이었다. 친구는 이문세 콘서트에 엄마를 모시고 다녀 온 지 며칠 안된 날이었고, 나는 한참 ‘알 수 없는 인생’이라는 노래에 꽂혀있던 터라 자연스레 이문세 노래를 한참 들었다. 요즘 있었던 마음의 부침들을 이야기하다보니 어느 새 하늘은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고, 우리는 아쉽지만 다시 터미널로 향해야 했다. 다시 또 세시간은 달려야 하기에, 편의점에서 부랴부랴 배고픔을 채울 주전부리를 샀다. 나는 소시지를, 친구는 샌드위치를 골랐다. 한 명은 서울로, 한명은 일산으로. 버스 앞에서 다시 옆 반 친구처럼 이별을 고하고는 서울로 올라왔다. 다시 또 세시간 넘게 걸려. 터미널에서 집까지는 다시 또 한시간이 걸렸었더랬지.




그러니까 바다를 본 시간은 결국 세시간 정도고, 그 세시간을 위해 우리는 하루 이십사시간 중에 열시간 정도 쓴 셈이었다.



그리고 올해, 또 그 바보같은 짓을 했다. 7월 30일에 이직한 애인은 아무래도 여름휴가 날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인지 아닌지 8월 1일이 창사기념일이란다. 나는 콧구멍에 바람을 넣고 싶었다. 금새 또 서울에 질려 있었다. 매일 보는 풍경말고, 어딘가 다른 곳에 왔다는 기분이 필요했다. 5월에 교토, 7월에 삿포로. 이미 통장 잔고는 바닥이고 멀리는 갈 수 없었다. 러시아 월드컵 우승국을 맞춘 내게는 소원권 한 장이 있었다. 그래서 말했다. 드라이브 가자고.



전날밤 차를 렌트해 아침 8시에 집에서 출발한 애인은 평일 아침 서울의 극심한 교통체증을 견뎌 한시간 사십분 만에 우리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렇게 열시 즈음 출발한 차는 가진해변에 오후 세시 반을 넘어 우릴 떨궈주었다. 운전하는 애인은 어젯밤 모기로 인해 새벽 세시에 잠을 깨 설쳤고 나는 나대로 밀리는 도로 위에서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세시간 동안 혼자 선곡과 가라오케를 신나게 해댄 상황이었다. 그 결과 둘 다 기운이 없었다. 휴게소에서 먹은 간식으로 배를 채우긴 무리였다. 매우 배가 고팠고, 눈앞에 보이는 아무 물회집이나 들어갔다. 원조 아저씨 누구의 물회집이었는데, 당연히 맛있었다. 성게나 멍게 덮밥도 먹어보고 싶었는데 물회는 2인분만 주문이 된다 하여 어쩔 수 없이 물회만 시켜먹었다. 해산물 추가 옵션이 있으면 돈을 더내고 그렇게 먹을텐데란 생각이 들 정도의, 살짝 아쉽게 해산물이 들어있는 물회를 소면을 말아 후루룩 후루룩 비워냈다. 가진해수욕장은 모래사장도 좁고, 해변도 그리 길지 않았다. 생각했던 해변 느낌이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제 인스타에서 열심히 검색했던 근처의 카페로 이동했다.



루프탑에서 사진 찍고 쉬면 딱이겠다 싶었던 카페에 도착했는데, 가진해수욕장보다 더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카페 앞에 펼쳐져있었다. 군사지역이라 통행시간이 정해져있었지만 우리는 어차피 그보다 일찍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하는 걸. 나는 라떼, 너는 오레오라떼를 주문하고 1층에서 음료를 기다렸다. 여기 지금 31도라는데 서울이 40도라니까 정말 피서온거다. 말그대로 피서다 피서. 라는 싱거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너의 눈에는 눈꼽이 붙어있었다. 수염도 그새 자란 것 같았다. 역시 피곤할거다. 괜히 미안해서 얼굴을 돌렸다. 1층 통유리 밖에는 두세발짝 정도 거리 뒤에 철조망이 둘러져있었었다. 북단은 북단인가보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4층의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인증샷은 남겨야지. 더워도 가보자. 그렇게 올라간 4층에서는 그저 바다만 보였다. 파아란 바다. 내가 보고 싶었던 바다. 함께 경치를 구경하던 가족의 아버지인 듯 한분이 동남아 바다색 부럽지 않다고 했다. 동남아를 가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바다가 보여주는 색은 참 예뻤다. 워낙에 사진 스팟인지라, 땡볕인데도 사람들은 계속 해서 ‘한장만 더찍자’ 사진을 찍어댔다. 찍는 것에도 찍히는 것에도 어색한 우리는 항상 찍던 같은 구도의 사진들을 몇 장 찍고 그늘 쪽 벤치 모양 의자로 대피했다.



피곤한 너는 내 무릎을 베고 누웠고, 나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이성커플들이 여러 차례 올라와 사진을 찍었다. 여자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는 남자들의 태도가 저마다 달라 매우 흥미로웠다. 포즈를 잡는 여자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가족단위의 팀들은 세 살배기 정도 되보이는 아이들이 꼭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아서 몇 장을 다시 찍어야했다. 그러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루프탑에 나와 애인만 있게 되었다. 너는 이미 곤하게 잠이 들었고 나는 살짝 발이 저렸다. 바다는 유리너머 계속 반짝거리고 있고, 여기엔 너와 나만 있고. 이제 이 곳에 한시간도 채 있을 수 없는데, 그럼 다시 또 서너시간을 걸려 서울로 돌아가야하는데, 너는 또 내일 출근을 하고, 나는 또 과외를 가야하고...쓰지도 않는 글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며 앉아있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내 눈 앞엔 바다가 있었다. 운전해야 하는 네게 미안하지만, 모르겠다. 그냥 지금은 바다를 봐야겠다. 언제 또 누가 올라올지 모르니까. 누가 올 때까지는 그냥 바다를 보자. 바다를 보자. 그냥. 눈 앞에 바다를 보자. 그냥 너도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혼자 열심히 바다를 보고 싶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주문한 음료를 기다릴 때 보았던, 1층에 앉아있던 가족이 올라왔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살짝 들떴는데 한쪽 구석에 우리를 발견하고는 조금 시무룩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셀카봉과 선글라스와 비치원피스와..





딱 그 때뿐이었다. 이후로 루프탑을 내려올때까지 아무도 없는 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너는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잠을 깼고, 돌아가는 길과 예상시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가야한다. 1층으로 내려와 철책을 넘어 모래사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열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이 해수욕을 하고 있었고, 나도 쪼리를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았다. 수영복 챙겨올걸. 어차피 시간 없어서 아무것도 못했을텐데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쉽다. 가고싶지 않다. 속으로 몇 번을 소리를 지르고, 다음에 또 오자는 약속을 하고, 다시 카페로 들어가 화장실을 갔다가, 저녁으로 때울 빵을 사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드라이브. 드라이브. 드라이브. 저게 설악산인가. 울산바위 전설 알아? 해지는 하늘 예쁘다. 이 도로는 꼭 제주도 같네. 같은 얘기를 주고받다 곧 말이 없어졌다. 나는 다시 차 안 노래방을 시작했다. 그러다 목이 너무 아팠다. 아무리 불러도 불러도 서울은 멀기만 했다. 확실히 올 때보단 가는 길이 짧았지만. 가평 휴게소에 들러 버터구이 오징어와 맛밤을 샀다. 사이다를 샀는데 시원하지 않았다. 멍청하게 계산대 근처에서 집어서 샀다. 이제 더 이상 가라오케는 무리다 싶어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들으며 깔깔거리다보니 서울이었다. 진작 비밀보장 들으면서 올걸. 왜 혼자 가라오케 생쇼를 했을까.




그러니까 또 역시 올해도 바보같은 짓을 했다. 애인은 도합 열한시간 운전을 했다. 나는 아홉시간 정도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정작 바다를 본 시간은 두세시간 정도였다. 그러니까 나는 소원권을 이런데다가 쓴 것이다. 작년에 친구와 해봐서 이게 얼마나 바보같고 피로한 짓인지를 알면서도. 당일치기로 8월에 강원도를 가는 바보짓을. 내가 좋아하는 영화 프란시스 하에서 주인공은 뉴욕에서 파리로 하룻동안 여행을 다녀온다. 것도 시차 적응을 못해 쏟아지는 잠 때문에 반나절을 날리고, 만나기로 한 친구도 만나지 못한 채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다.




일년에 하루 정도는 이런 개고생도 괜찮은 것 같다. 어쩌면 바다는 핑계지. 무언가를 하기 위해 이정도의 생고생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 그럴 수 있는 내 모습이 좋은 것 같다. 그냥 해도 그만 안하는 게 이득인 이상한 목표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굳이?’ 의문이 드는 일을 하고 있는 내 멍청함이 사랑스럽다. 나는 역시 낭만에 너무나 취약하다. 낭만의 낭자는 낭비의 낭자라고 굳게 믿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낭비는 이정도니까. 일년에 하루 정도. 숙박비를 제외한 하루치 식사비. 교통비. 그래서 이런 바보짓을 이해해주는 친구와 애인에게 감사하다. 이런 방면으로는 적당히 같이 멍청한 게 좋은 것 같다.




과연 내년에는, 누구와 어떤 생고생을 사서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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