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일기_01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길음동을 떠나 신수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신수동은 제가 이십대 적에 공부하고, 생활하던 공간이라 마음으로는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새롭다고 하기엔 이미 익숙한 길과 자주 가는 카페들이 많은 동네여서요. 이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첫 독립인데 낯선 동네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기도 합니다. 이사하던 날, 신촌오거리가 보이자마자 ‘아. 지겨워’라고 나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으니까요.
하지만 신수동의 ‘신’자가 ‘새로울 신’자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앱이 보여주는 지도에서 옆 동네 이름이 구수동인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전입신고를 하고나서 이제 성북구청장이 아닌, 마포구청장을 투표할 권리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조금 낯설었습니다. 이 동네의 사람들은 어떤 후보를 더 좋아할까요. 또 물건을 온라인으로 주문할 때마다 새 주소를 쳐야하는 일도 조금 신선했습니다. 우편번호가 정말 낯설었어요. 처음 읽어보는 번호의 조합이었습니다. 구몬일어 교재를 받는 주소도 바꿔야하겠죠.
이 곳에서 함께 추억을 쌓던 친구들은 ‘모두들’ 떠나갔는데-아. 모두는 아니네요. 학교를 졸업하고도 이 동네에 계속 살며 출퇴근을 하는 친구 몇몇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제 이사 소식에 반갑다며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네요– ‘거의 대부분’ 떠나갔는데, 다시 이 동네에 와서 이제 막 스무살이 된 새내기 아이들과 함께 시작하는 제 첫 셋방 생활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혼자 살아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았고, 여러 가지 운 때가 맞아 독립생활 추진에 속도가 붙었고, 그래서 덥석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용달차가 눈앞에 와있던 기분이었어요. 어쨌든,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혼자 살며 드는 생각들을 글로 정리해 볼까 합니다. 1주의 마감기한을 지키며 계속 글쓰는 리듬을 가져가보려 합니다. 깊은 통찰 같은 거 없고 짤막해도, 생활의 찌든내가 덕지덕지 묻은 글들로 채우려구요. 섬유유연제 냄새가 날 수도, 화장실 환기구 냄새가 날 수도 있겠다요.
그냥 써서 올려야죠. 뭐. 그 수밖에 없네요. 읽어주시면 제가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