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일기_06
가사 노동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래도 다림질.
오른쪽 앞 소매를 다리면 뒷 소매쪽이 다시 구겨진다. 그런 식으로 한 벌의 옷에 무한반복의 다림질이 시작되고, 완성은 멀었는데 스팀 때문에 이마에선 땀이 삐질삐질이다. 다림질은 대체 언제 완성되는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어렵다. 이제는 포기하고 얼추 보기에 다림질한 듯한 느낌이 들면 그만둔다.
그래도 다림질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촥-촥- 증기를 내뿜는 다리미를 들고 있으면 뭔가 도구를 다룰 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다. 구겨진 무언가가 눈 앞에서 촥 펴지는 느낌도 상쾌하다. 어쨌든 다리기 전보다 다린 후에 옷 상태가 마음에 든다.
가사 노동 중에 가장 즐거운 일은 요리.
특히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무언가 할 때. 불 위에서 뭔가 볶거나 끓일 때 그걸 지켜보는 일이 재밌다. 재료들끼리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맛을 보기 직전의 상태. 간을 맞춰야 할 때의 긴장감. 적당한 불의 세기를 이용해 딱 맞는 타이밍에 맛을 더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그래도 싫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은 설거지.
즐겁게 하진 않지만 멍 때리며 할 수 있다. 자취하기 전부터 그나마 친숙했던 가사노동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요리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얻어 먹은 뒤 설거지를 할 일은 평소에도 많았으니까. 게다가 뽀득뽀득 해지는 그릇을 건조대에 다시 얹어놓는 일도 개운해서 좋아한다.
빨래는 그럭저럭. 분류해서 돌리는 일까지는 재밌는데 세탁기에서 옷을 꺼내 너는 일은 또 별로 안좋아한다. 건조대를 접었다 폈다해야 하는 원룸이라 빨래를 널어놓으면 방이 획기적으로 좁아지는 일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래도 돌아가는 세탁기 안에서 세제 냄새가 날 때는 뭔가 여기가 나의 방이라는 안정감이 든다. 여차저차할 때는 집 근처 코인세탁방에서 건조기까지 이용하면 되니까 도망갈 구멍도 있다. 옷을 개서 넣거나 걸어놓을 때는, 한동안은 빨래를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심이 들어서 좋다. 근력이 많이 필요한 일도 아니기에.
이런 내가 가사노동 중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은 걸레질. 걸레질이다.
걸레를 떠올리면 교실 뒤에 걸려있던 마대가 생각난다. 쾌쾌한 냄새를 내며 말라 비틀어진 채로 교실 한 구석에 쳐박혀 있던 마대. 초중고 시절 교실 청소를 해야 할 때면 나는 가능하면 비질을 선택했다. 마대 끝에 매달려 있던 걸레는 언제나 늘 항상 더러웠기 때문이다. 비둘기색이 아닌 걸레를 본적이 없다. 짙은 회갈색. 덩어리진 검은 무언가가 버무려진. 걸레에선 항상 비린 냄새가 났다.
중학생 때까지 집이 학교에서 항상 걸어서 5분거리였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웬만하면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다. 근데 다 닦은 걸레를 빨려면 수업 내내 가지 않았던 화장실에 필연적으로 가야하는 것이다. 하루동안의 내 노고를 묵사발로 만드는 시간이었다. 비가 오거나 습기가 높은 날엔 걸레질을 하고 나면 오히려 물이 마르면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기도 했다.
대형빌딩의 화장실 한켠에 아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마대를 보면 항상 놀라웠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 되면 상황은 아주 달라지는구나. 도구를 쓰임에 맞게 잘 활용하고 정돈해놓는 청소부들의 성실함이란. 매번 새것같은 걸레를 보며 감탄했었다. 10대 아이들에게 그런 성실함은 요구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교육상의 목적으로 보수없이 하는 청소노동에서는.
걸레질을 할 때에는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갔다. 오른 손목이 많이 약한 편이라 조금이라도 힘을 줘서 바닥에 낀 때를 문지를라 치면 손목 안에서 무언가 뒤틀리는 느낌이 났다. 왜인지 타자기를 두드리다가도 아니고, 걸레질을 하다 손목에 무리가 가면 기어코 심사가 뒤틀리고 마는 것이다. 고작 이따위 것을 하다가! 티도 안나는 걸레질을 하다가!
게다가 사용한 걸레를 사용하기 이전에 100% 깨끗한 상태로 되돌려 놓는 건 언제나 불가능했다. 걸레를 깨끗하게 하는 일은 닦은 후 바로 빠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다. (해보지 않아서 확신은 없지만) 그런 부지런함이 결여된 나로서는 걸레질을 피할 수 밖에. 같은 이유로 행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바로 빤다고 빨아도 김칫국물은 지워지질 않고, 삶지 않고서야 행주질을 하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기가 너무나 힘들다. 행주를 삶을 빨래통같은건 당연히 자취방에 없다.
또 빨아놓은 걸레를 사용할 때 꼭 이전에 무엇을 닦았는지 상기가 되는데, 그 이미지를 다시 머릿 속에 떠올리는 일도 고역이다. 전에 그 더러운 것을 닦은 천으로 이걸 닦아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튼 난 걸레질을 무지 싫어한다. 싫어하는 이유를 무수히 많이 댈 수 있다.
그래서 로봇청소기를 꼭 사고 싶다.
물에 적신 무언가로 바닥을 닦지 않고 사는 일은 불가하니까.
원룸인데 로봇청소기가 웬 말이냐 하시겠지만, 여러분. 저 같은 사람은 기꺼이 그만한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로봇이 감당할 때까지, 누가 이 걸레질을 계속 해왔을까. 그 노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집안일보다 가사노동이란 단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더 많이 언급됐으면 좋겠다. 생존을 위해 피할 수 없이 꼭 해야 하는 일인데, 한 인간 개체에게 이 정도의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신성한 노동이다. 한번도 걸레질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해 본적 없다면 당신은 당신의 걸레질을 감당해온 사람에게 얼른 군말없이 로봇청소기를 선물하라. 본인이 걸레질 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꼭 갖고싶어서만은 아니다. 거짓말이다. 갖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