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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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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Oct 01. 2019

월세 50만원+α

자취일기_09

나의 방에는 양문형 농 두 짝이 있다. 방에 원래 있는 옵션이었다. 테두리와 손잡이는 짙은 갈색의 나무결 시트가 20센티 가량 아주 두껍게 붙어있다. 그 외에 문 부분은 전부 하얀색이다. LED 전등 빛을 받으면 미세하게 번쩍거리는 방의 흰 색 벽지와 상당히 안 어울리는데 어쩔 도리가 없다. 아무튼 내가 지금 생활하는 방에서는 이 장롱이 가장 거대한 가구다.      



두 짝 중 왼쪽에 위치한 한 짝은 옷을 걸어야 하는 봉의 고정받침이 갈라지는 바람에 제대로 사용이 불가했다. 무게가 나가는 옷이나 많은 양의 옷을 걸어놓으면 여지없이 봉이 장롱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이사 온 3월초, 신나게 겨울옷을 이 봉에 걸고 나서 ‘정리 끝!’하며 문을 닫자마자 장롱 안에서 둔탁한 소음이 났다. 문을 열어보니 기껏 정리해놓은 옷들이 인정사정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왼쪽의 농에는 가벼운 여름 원피스만 걸 수 있다. 다이소에 가서 본드를 사면 그 옷봉을 고정시킬 수 있을까. 옷장 문을 열 때마다 생각하지만, 막상 다이소에 가면 왜 새까맣게 기억이 안 나는지. 반년 동안 그 상태 그대로다. 옷을 걸 수 없어 텅 빈 농 바닥부터는 수납박스를 사서 쌓아놓았다. 외출용 옷보다는 방에서 편하게 입는 옷들, 속옷, 트레이닝 복 같은 것들을 구석구석 쌓아놓았다. 처음에는 분명 개어놓았는데 지금은 왜인지 쌓여있다. 나름의 구분선은 있어 나는 꽤 잘 찾아내지만 다른 이들이 보면 혼란스러울 거다.      



나머지 한 짝은 크게 가로로 두 칸이다. 아래 칸에는 겨울용 이불, 침대보, 그리고 계절에 입지 않는 옷들이 좀 더 큰 수납박스에 담겨져 보관되어 있다. 그 윗칸에는 다른 계절의 외출용 옷들이 걸려 있다. 이 칸을 가로지르는 옷걸이봉은 제대로 걸려있어 다행이다.       



요새 입고 드나드는 지금 계절의 옷들은 신발장 옆 행거에 걸려있다. 침대에서 누우면 신발장이 보이지 않게 가려주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지만, 부엌과 위치가 가까워, 생선이라도 구울라치면 걱정이 된다. 요리냄새가 옷에 베일까봐. 그러나 역시 다이소에 가면 까마득하게도 이런 사실은 잊어버리게 되고, 고등어를 구울 때마다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방에 존재하는 가장 커다란 가구를 미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조금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상태로 반년간 사용하는 나를 나는 꽤 잘 방치해놓고 있다. 내 방이 아니니까. 나이가 좀 더 어렸으면 이런 일에 좀 더 태연했을텐데, ‘30대의 나는 이런 방에서는 생활하지 않을거야’ 라는 환상 속에 살던 나라면.      



가을이라 긴 팔 티셔츠들과 외투들을 꺼내고, 여름옷 정리도 해야지 하다가 드는 생각의 종착점은 결국 나의 ‘집없음’이다. 돈에 얽히지 않을 만큼 대범하지 못해서 삶이 고달프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내게 기회를 주던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방에 달린 옵션가구를 보면서 기어코 내 처지까지 끄집어내는 나를 보며 온전히 편 들어주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나의 세입비용은 월세 50만원+α다. 기념일마다 나의 자취방을 벗어나기 위해 지불하는 숙박비.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결혼을 고려하며 받는 스트레스. 4대보험이 되는 회사에 잠시 취업해 전세대출을 받을까 하는 고민. 매일밤 주택공사의 공공임대주택, 장기전세주택 정보를 뒤지는 수고까지. 어디선가 프리랜서들이 모두 이런 기회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가는 걸까. 다들 얼마만큼의 세입비를 내며 오늘 하루를 버텨내는 걸까.  이 시대는 독립비용으로 청년에게 얼마를 요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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