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늘어지게 주말 잠을 즐기는데 알밤양이 살금살금 일어나 주방에 가서 발받침대를 밟고 올라가 냉장고에 있는 빈약한 반찬을 꺼내고 밥을 푼 다음에 나를 깨웠다.
"엄마, 생일 축하해."
"어멍, 어멍, 웬일이니!!"
다섯 살 알밤양의 첫 서프라이즈였다.
결혼기념일에 종이로 가랜드를 만들어 벽에 붙이고 미리 선물을 준비해 이벤트를 해 주기도 하고 한참 제빵에 빠져있을 때는 케이크를 만든다고 주방을 무법천지로 만들기도 했다. 재료비가 케이크를 사는 거보다 더 들고 쓰나미가 휩쓸고 간 미끌거리는 주방을 치우는 데 힘을 빼야 할 걸 생각하면 그냥 케이크 하나 사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알밤이는 매년 엄마, 아빠 생일과 기념일을 챙기면서 무럭무럭 자라 예비중딩 열네 살 언니가 되었다. 키는 고무줄로 늘인 듯 쑥 커졌고 발랄한 에너지는 차분해졌으며 가볍던 몸은 묵직해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건 알밤양의 서프라이즈다.
"조금 있으면 내 생일이네. 난 알밤이 서프라이즈가 세상에서 젤루 좋더라. "
작은 머리로 뭔가를 짜내는 게 이뻐서 괜히 며칠 전부터 바람을 넣었다.
알밤양이 고민을 한다.
"아, 이제 뭘 하지?
몇 년 동안 이벤트를 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떨어졌단다.
올해는 모종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길래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생일 당일 아침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에 나가더니 한참 있다 한 보따리를 들고 돌아왔다. 집 앞 슈퍼보다 조금 더 멀리 있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에 가서 장을 봐 왔단다.
"그거 뭐야?"
"스탑, 엄마는 일하고 있어. 부엌에 오지 마."
"우아, 엄마 생일상 차려주려는 거야? 늠 기대된다."
알밤이가 사온 재료를 식탁에 꺼낸다. 오잉? 재료들이... 시판용 소불고기 전골에 구이용 소고기, 베이컨까지 있다. 딱 보니 내가 아니라 알밤이가 좋아하는 메뉴다. 보기만 해도 느끼하다. 1월부터 맘먹고 고기를 최대한 적게 먹으려 노력 중이라 대략 난감하지만.
"우아~ 맛있겠다" 아이의 텐션을 높여주기 위해 괜히 호들갑을 떤다.
"엄마는 가서 일해."
"그래도 돼? 이걸 혼자 다 할 수 있어? "
"어. "
알밤이는 핸드폰으로 레시피를 보면서 미역국을 끓이고 시판용 불고기를 꺼내 볶고 구이용 소고기를 양념을 한다고 분주했다. 나는 일부러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거실에서 일을 했다.
"엄마, 다 했어. 오면 돼."
식탁에는 최대한 예쁘게 세팅한 생일상이 차려져 있었다.
그동안 알밤이의 서프라이즈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든 생일상을 받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참조한 레시피가 딱 2인분용이었나보다. 미역국이 달랑 두 그릇이 나왔다.
"미역국이 좀 짭짤해."
간이 셀 때 주부가 하는 멘트를 알밤이가 한다.
"음, 밥이랑 먹으니 괜찮은데?"
장을 보는데 거금 3만 5천 원을 썼단다. 남편은 밖에서 생일밥은 사주어도 미역국을 끓여주지는 않는데 남편한테도 못 받은 집밥 생일상을 딸한테 받으니 감개무량하다. 다섯 살 때 없는 반찬 꺼내서 생일상을 차려줄 때는 이렇게 혼자 준비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스무 살에는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된다.
그럼 밤톨군은 뭘 해 줬냐고요?
"밤톨군아, 넌 뭐 해줄 거야? "
"뭐 해줄까? "
"엄마 예쁜 패딩 조끼 봐 놨는데 그거 사줘."
"응. 그럼 엄마가 경조비에서 빼서 주문하세요."
아들놈한테 생일선물은 이렇게 받아내야 한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생일상 #육아에세이 #서프라이즈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