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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May 23. 2023

잊고 있던 기억

기억 속 내 이야기




잊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기억의 앞 뒤는 잘라져 나갔지만 미닫이문 안쪽 방에서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물었다. 그 시기는 엄마, 아빠 사이에 다툼이 잦았다.

"너희는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누구와 살고 싶어?"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대답했다.

"난 엄마랑 살 거야. 엄마 따라갈래."

옆 방에서 아빠가 듣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엄마와 못 살게 될까 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빠는 그날 무너진 마음을 안고 산에 올랐다고 했다.  부모도 형제도 없이 혈혈단신 외롭게 살아오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 셋을 낳았는데 아내는 다른 이에게 가버린다.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었던 가정이 산산조각 나고 자식들에게도 자신은 필요 없는 존재구나 싶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었던가. 나무에 줄을 매어놓고 산 중턱에서 마지막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자식 얼굴이 줄줄이 떠올랐다. 차마 실행할 수 없었다며 앞으로 어떻게든 새끼들은 자신이 키우리라 다짐하고 발길을 돌려 산에서 내려왔다고. 엄마가 떠난 어느 늦은 밤 얼큰하게 취해 들어온 아빠가 한탄하듯 내뱉은 말에 막내딸은 생각했다. 자신이 아빠에게 상처를 줬구나. 어린 자식이 서른 살이나 많은 어른에게 죽고 싶을 만큼 상처를 줄 수가 있구나. 


엄마가 떠나고 집에 낯선 여자가 방과 마당까지 왔다 갔다 하며 굿을 했다. 방울 소리, 북소리, 주문같이 내뱉는 낯선 말이 무서워 귀를 움츠렸다. 아빠는 엄마에게 미련이 많았다.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답답한 마음에 훗날을 점치며 힘든 시간을 견디려 했다. 무당은 아빠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었다. 굿이 끝나고 어둑하게 가라앉은 집에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는 아이 귀에도 흘러들어왔다.

'조금만 참아요. 다시 돌아온다잖아.'

무당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도 엄마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아빠 #에세이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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