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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작가 Jan 04. 2023

시장에서 만난 과일의 황제 두리안

삶이 무료할 땐 시장에 나가보자


지금은 각자 따로 운동하지만 한 때 아들과 아침, 저녁으로 함께 운동했던 적이 있다.

아침에는 아파트 두 바퀴, 저녁에는 시장 한 바퀴를 걸었다. 집 앞 시장은 중동, 상동 시장 두 개가 이어져 걷기에 거리가 아주 짧지는 않다. 추운 겨울에는 바람을 피해 운동을 할 수 있어 안성맞춤이고 죽 이어진 다양한 가게를 구경하면서 걸으면 지루하지 않았다. 시장은 운동과 장보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어느 일요일 아침에 아들과 운동을 하다 시장을 지나간 적이 있다. 떠들썩한 목소리가 떠난 이른 아침 시장은 축 가라앉은 칙칙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활기가 있었다.  정적인 공간이 고요하긴 했다. 하지만 힘빠진 고요함이 아니라 기지개를 펴고 깨어나려는 힘이 깔린 고요함이었다. 횟집 앞에 물을 대기 위해 큰 탱크차가 서 있고 수족관에 물을 갈고 있었다. 하루동안 팔 물건을 진열하는 상가도 보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새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아침은 신비롭다. 하루종일 몸을 분주하게 움직이다 밤이 되면 피곤함에 지치기도 하지만 신기하게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새로운 힘이 솟아 일터로, 목표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깨어나는 시장은 새로운 날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


어느 날 아들과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데 사진으로만 봤던 과일이 눈에 들어와 발걸음을 멈췄다. 아니, 발걸음이 멈춰졌다. 

두리안! 바로 두리안이다!




과일이라 하기엔 생김새가 사납다

  "엄마, 사람들이 그러는데 두리안이 똥냄새가 나는데 먹으면 진짜 맛있대."

  "일명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라고 한다나!"

  "뭐시라? 냄새는 똥냄새인데 먹으면 맛있다고?"


도대체 그 맛은 어떤 맛이야? 상상이 안 간다. 

똥냄새를 이겨내면 달콤함이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불쾌한 냄새 사이로 맛있는 냄새가 나면 맛있다고 느낄 수 있나?

어떤 질감일까? 궁금해서 슬쩍 만져보았다. 만지자마자  팔 윗쪽 피부 솜털이 바짝 곤두섰다.


철통이다! 아니, 이 이것은 무기다! 어쩜 이렇게 날카롭고 단단할 수가!


옆에서 기다리는 주인아저씨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호기심도 생겨 가격을 물었다.

  "2만 3천 원입니다."

뭐? 가격 미쳤다. 아무리 과일의 황제라 해도 이 비싼 가격에 똥냄새나는 무시무시한 두리안을 살 마음은 없다. 마침 옆에 익숙한 모양의 파인애플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그냥 파인애플 사자, 파인애플은 엄마가 자를 수 있지만 두리안은 자르다가 죽을지도 몰라."

나는 두리안보다 훨씬 저렴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샀다. 파인애플은 생긴 거와 다르게 껍질이 날카롭지 않다. 진짜배기 뾰족한 가시로 무장한 전사 두리안. 두리안이 어디에서 살았는지 그의 태생이 궁금해진다.


두리안 너는 어떤 위험에서 살아남아야 했기에 개복치가 자신을 지키려 한껏 부풀려 가시를 세운 모습처럼 껍질이 두꺼워지고 날카로워졌니?


척박한 환경에서 자신을 지키느라 애썼을 두리안이 측은하기도 하지만  바늘 하나도 안 들어갈 것 같은 단단함과 날카로운 가시에 괜히 내가 찔릴 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아, 두리안은 살인 무기야. 가까이하지 말자."

  "두리안 따다가 죽었다는 사람은 없을까? 기사 검색해 봐."

꼬리를 물고 중얼거리는 엄마한테 아들은 혀를 내두른다.

  "엄마, 너무 멀리 갔다."

첫경험이 중요하다고 두리안과 첫만남은 내게 살벌한 감촉을 생생하게 남겼다. 과일가게를 벌써 저만치 지나쳤는데 만져봤던 단단하고 날카로운 감촉이 자꾸 머릿속에 엉뚱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동남아시아에서 자라는 두리안, 나는 나무가 우거진 곳을 걷는다. 숲을 좋아하는 나는 위험이 도사린 것을 알지 못한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두리안이 익어서 지나가는 내 머리에 떨어진다.

떨어진 그대로 머리에 박힌다. 머리에서 세상 겪어보지 못한 고통이 느껴지며 바로 세상 하직한다.

순식간에 걱정의 끝판왕으로 등극했다.


과일 철퇴가 연상된다. 살인무기인데 상상한 모습은 좀 우스꽝스럽다.

피부 세포가 따끔따끔, 머리 세포가 흠칫흠칫


내 손으로 두리안을 사 먹을 일은 이번 생애 없을 것이다.



삶이 무료하거나 살짝 권태기가 온다면 시장에 나가보는 것도 좋겠다. 시장을 왜 삶의 현장이라고 하는지 알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행위는 가리는 것 없이 날것 그대로 진지한 삶의 본모습이다.  삶의 치열함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태평하게 불만이나 늘어놓는 자신을 돌아보고게 된다. 나처럼 아주 새로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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