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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작가 Jan 03. 2023

우리는 비밀 친구

친구는 나이로 먹는 게 아니다

새빨간 부츠를 신고 있는 그 아이는 앞집 할머니를 마주치자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구, 네가 얼마 전 이사 온 집 딸이구나"

  "안녕하세... 요"

  "웬일이냐, 나랑 부츠가 똑같네?"

그랬다. 얼마 전 생일 때 받은 빨간 부츠와 똑같은 부츠를 할머니가 신고 있었다.  누군가 같은 걸 하고 있는 걸 보면 기분이 나쁜데 하필 나이 든 할머니와 같은 부츠라니!

아이는 누가 보는 게 싫어 얼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부츠는 할머니가 신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나이 들어 쭈글쭈글 주름진 얼굴과 손, 작은 체구는 왜소해 보였고 윤기가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빨간 부츠는 너무 도드라져 보였기 때문이다.

  "오호~ 네가 이 부츠를 신으니 찰떡처럼 어울리는구나?"

  '저도 알아요, 할머니. 하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츠라고요.'

짜증이 올라왔다. 열두 살이 된 아이는 요즘 엄마, 아빠한테도 짜증이 자주 나고 혼자 있고 싶어질 때도 많았다. 하늘에는 빗줄기가 주룩주룩 내려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아이는 편의점에 과자를 사러 나선 길이었다. 우산을 펼치려는데 할머니가 자꾸만 말을 건다.

  "할미는 어떠냐? 할미가 큰 마트에 갔는데 자꾸 요 새빨간 부츠가 나를 부르지 뭐니? 차마 그냥 갈 수가 있어야지!"

할머니는 손을 허리에 얹고 자랑하듯 발을 들어 보였다.

  "언제 신을 수 있을까 하늘만 매일 바라봤는데 마침 비가 내리지 않겠니? 얼른 빨간 부츠를 신고 나왔지."

  "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앞 집 할머니는 수다쟁이였구나. 할머니의 관심이 귀찮게 느껴졌다. 나이 든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본 사람들한테 말을 잘도 건단 말이야. 피곤해,  정말. 아이는 들고 있던 우산을 펼치고 편의점에 가려던 걸음을 서둘렀다.


투다다다다

갑자기 할머니가 아이를 지나쳐 달려가더니 앞에 고인 물웅덩이를 향해 점프를 했다.

참방! 촤아악!

  "할, 할머니! 괜찮으세요?"

당황한 아이가 가까이 다가갔다.

  "크헤헤헤, 이런 기분이구만. 신난다"

아이를 쳐다보는 주름진 할머니 눈동자는 까맣고 동글동글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개구진 눈이다. 호기심이 잔뜩 묻어있다.

  "비, 비 맞으면 감기 걸려요."

  "캬하하, 내가 젊어서 했던 말을 니가 하는구나.   아이들 키울   맞으면 감기 걸린다고 못하게 했는데 말을 듣나. 빗속 뛰어다니며 어찌나 신나게 놀던지!"

  "오늘은 내 버킷리스트를 실행하는 날이란다. 어릴 때 못 신어봤던 새빨간 부츠를 신고 빗속에서 놀기 말이다!"

할머니는 아이처럼 깡충깡충 뛰며 물을 퉁긴다. 한참을 빗물을 차다 황당해 얼이 빠져있는 아이를 빤히 쳐다본다.

  "너도 함께 놀래?"

  "엄마한테 혼나는데..."

  "그럼 넌 거기 있으렴"

할머니는 더 권하지도 않고 또 참방거리며 작은 웅덩이들을 뛰어다녔다.

할머니가 통통거릴 때마다 빨간 부츠가 춤을 춘다.

아이가 빨간 부츠를 내려다본다. 자신의 빨간 부츠는 우울한데 할머니 빨간 부츠는 즐거워 보인다. 갑자기 부츠에게 미안해진다.

가만히 서 있던 아이는 들고 있던 우산을 놓고 웅덩이에 뛰어들었다. 빗물이 머리와 얼굴을 적시고 웅덩이 물이 허벅지까지 튄다.

  "와악! 차가워!"

  "차갑긴, 시원하지. 깔깔깔"

아예 팍 젖고 나니 진짜 가슴이 시원해진다.

  "저기 놀이터 앞에 대왕 웅덩이가 있단다, 가보자!"

  "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힐끔거렸다. 할머니와 아이는 사람들 시선도 아랑곳 않고 신나게 비를 맞으며 웃었다.

너무 재밌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노는 걸 알면 경악했을 텐데 집에 없어서 다행이다.

신나게 논 후 할머니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옷을 말려주고 따끈한 코코아를 내밀었다.

"오늘 일은 비밀이다. 내일 아들 가족이 여행 갔다 돌아오거든."

아이는 코코아가 든 커다란 머그컵을 할머니 머그 컵에 꽁! 하고 부딪쳤다.

"저야말로."

그렇게 할머니와 아이는 둘만의 비밀을 공유한 비밀 친구가 되었다.



다음날 아이는 엄마와 시장에 갔다 오다  앞에서 할머니와 마주쳤다. 할머니 옆에는 아들로 보이는 아저씨가 화단에 흙을 다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흙에다 물을 흠뻑 주었다.

아이가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안녕, 친구~"

할머니와 아이는 살며시 눈을 찡긋하며 사인을 주고받는다. 아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생겼다 사라졌다. 앞으로 새로운 집에서 생활이 즐거워질 것 같다.

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웬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아이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갔다.

"어머, 너 언제 앞 집 할머니랑 친해진 거니? 요즘 말도 없어지고 엄마랑 대화도 잘 안 하려고 하면서"

"내가 언제! 엄마 배고파. 얼른 맛있는 저녁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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