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밤이는 주말마다 아빠 화실을 따라나선다. 화실 가서 그림을 그리는 데 재미가 들렸다. 오피스텔에는 빈 방이 있는데 초창기에는 밤톨군이 공부방으로 몇 달 쓰다 안 와서 비워져 있다. 아빠를 따라가면 좋은 일이 많다. 맛있는 점심도 사주고 간식도 사주고 군것질을 해도 뭐라 안 하고 이 닦으라는 소리도 안 한다. 결정적으로 화실에는 '엄마'가 없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설거지해라, 운동해라, 뭐해라 해라~ 엄마 잔소리 안 들어서 좋단다. 나 참, 어처구니없다. 그림 그린다고 몇 시간 꼼짝 않고 앉아 있으면 살은 찌고 건강은 나빠지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두겠는가. 사실 한 놈이라도 집에 없으면 나도 편하다. 뭐!
오전에 남편과 딸이 집을 빠져나가고 오전 내내 책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책을 몇 박스나 갖다 버렸다. 누가 보면 이사 가는 줄 알겠다. 힘쓰며 정리하다 보니 짜장면이 급 당긴다. 오늘의 분량을 얼추 마무리하고 방에 콕 틀여 박힌 아들에게 짬뽕 사주겠다고 꼬셔 밖을 나섰다. 햇살이 화창하니 기분도 산뜻해진다. 사람은 햇살을 받아야 한다. 비타민 D를 팍팍 받으며 오랜만에 아들과 소소한 수다를 나누며 나란히 걷는다. 2~30분 거리의 학교를 매일 걸어 다니기 시작해서 그런가 밤톨군 발걸음이 예전보다 빨라졌다. 아들 보폭에 맞춰 평소 걸음걸이보다 빨리 걸으려니 장딴지가 묵직하다. 녀석, 또 큰 것 같군.
짬뽕타운에 도착하니 운도 좋지. 오늘은 자장면 반값데이다. 자장면과 짬뽕을 주문해 맛있게 먹고 도서관에 갔다.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부제를 단 <마녀체력/이영미> 책을 빌렸다. 나도 딱 마흔을 기점으로 운동에 눈을 떴다. 마흔 생일날 여성전용 헬스센터 커브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뒤로 수영도 배웠고 워킹도 시작했고 지금은 아침마다 달리려고 노력한다. 저자처럼 혁혁한 성과를 내진 않았지만 조금씩 꾸준히 운동의 세계를 경험하는 중이다.
책을 빌려 아들과 헤어지고 카페로 향한다. 오전에 체력을 써서 지금 집에 가면 분명히 드라마를 보거나 뒹굴거리며 오후를 보내게 될 것 같았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아이패드를 세팅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씩 홀짝거린다. 카운터에서 주문받는 소리,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일상적인 소음은 지루한 기운을 환기시켜 준다.
카페를 한 번 둘러본다.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들, 공부하는 학생들,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 배경으로 한 자리를 차지해 일요일을 보내고 있다. 편안하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