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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May 27. 2023

마주 보고 놓아주기

엄마의 이름



엄마, 엄마가 사랑하는 손녀가 사춘기인가 봐. 움직이는 거 싫어해. 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안 해.

말도 얼마나 밉게 하는지 몰라.

어제 애한테 그 얘기했어.

"너가 어릴 때 엄마였으면 할머니한테 벌써 등짝 몇 대 맞고 몇 번은 홀딱 벗겨서 쫓겨났어."

애가 울 엄마는 안 그런데~ 하고 배시시 웃어.

참 내.


엄마가 잠시 우리 집에 마실 왔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엄마가 그랬지.

"그때 내가 몰라서 그랬어. 열여섯에 시집가서 스무 살에 애를 다 낳았으니 뭐를 알았겠니."

그래. 다 이유가 있겠지. 이해하고 말고. 그런데 엄마는 그다음 말을 이어갔어.

"엄마가 미안해.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잘못했지.   니 아이들 키우는 거 보면서 많이 배웠다. 옛날 나 같으면 벌써 손이 올라갔을 텐데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면서 조곤조곤 말로 하더라. "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나도 아이들한테 상처 많이 줬어요.

아이들 마음을 아프게 한 기억들, 그래서 첫째가 초등학교 때 정서가 불안했나 자책도 많이 했고요. 이건 남편도 몰라. 아무도 몰라요. 사랑을 주고 싶은데 자꾸만 울컥 올라오며 혼냈던 일들이 나를 아프게 해요.

아무튼 미안하다는 말을 듣으니 가슴이 좀 찡했어. 그리고 고마웠어.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무언가라도 붙잡아야 살 수 있었을 외할머니.

아들, 딸 차별하며 키우다 한 입 덜으려 어린 딸을 시집보낸 할머니에게 원망이 많은 엄마

가정을 사랑으로 꾸리지 못하고  끝까지 자식을 책임지지 못한 엄마

최선을 다했으나 가장으로서 중심이 되어주지 못한 아빠

그 안에서 조금은 서러웠던 나

알게 모르게 상처받으며 크는 내 아이들

위에서 아래로 대물림되는 상처들을 보며 생각한다. 각자가 진 삶의 무게가 누가 더 무겁다고 할 수 있을까?

단지 누구나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해내며, 최선이라 믿으며 살아낼 뿐이다.




유년의 영숙이와 유년의 내가 마주 본다.

영숙이 말한다.

미안해. 내가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해서. 못난 나를 용서해 줘.

나는 영숙에게 손을 내민다. 나를 낳고 키운 내가 기억 못 하는 시간.

애 셋을 잘 키우고 싶은데 힘에 부쳤을 시간을 애써 상상해 본다.

영숙과 나는 손을 꼭 쥔다.



엄마, 아빠가 헤어질 때 엄마는 서른두 살, 아빠는 마흔한 살이었다. 그 해 두 분의 나이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때 엄마, 아빠보다 나이를 더 먹고 보니 당황스럽다. 오십이 코 앞인데 나는 여전히 감정적으로 유치하고 실수투성이고 단단하지 않다. 아, 칠십이 된다고 완벽해지지 않겠구나. 사람은 어제보다 나아지기를 바라며 나아가지만 완성될 수 없구나. 나와 당신들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부딪치는 실수와 약한 모습도 기꺼이 안아줘야겠다.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랐건 우린 모두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이제는 엄마, 아빠를 보듬고 감싸 안아주고 싶다.

엄마의 이름 최영숙, 아빠의 이름 연제수 두 분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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