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탄다. 초등학생 남자아이와 할머니가 타고 있다. 어쩌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는데 큰 눈에 쌍꺼풀이 진하고 표정이 밝다.
"어머, 남자아이가 어쩜 이렇게 이뻐요."
할머니에게 슬쩍 칭찬을 하는데 표정이 이쁘다는 주어를 빠트렸다. 아이가 바로 웃으며 인사를 한다.
"고맙습니다."
어머, 역시! 밝은 기운.
아파트를 따라 산책길을 걷다 보면 삼삼오오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네이비색 교복을 입은 부쩍 키가 큰 중학생들과 알록달록한 옷과 가방을 멘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초등학생들이 교차하며 자신들의 학교를 찾아간다. 초등학교 정문이 보인다. 교문 앞에는 학원 선생님들이 홍보물을 가지고 나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몇몇 부모는 교문 안으로 멀어져 가는 아이에게 손을 흔든다. 학교 안 스피커에서 요즘 유행하는 가요가 경쾌하게 흘러나온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의 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야무지게 머리를 쫑쫑 땋아 묶었다. 혼자는 못 묶을 나이에 저렇게 정성스러운 머리를 하고 말끔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모습을 보니 알밤이 저학년 때 평일마다 아침을 먹는 아이 뒤에서 머리를 묶어주던 때가 생각난다. 다섯 살 때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옆 동 사는 친구에게 디스코 머리 땋는 것을 처음 배웠다. 어설픈 솜씨가 몇 년을 따다 보니 능숙해졌다. 내 아이도 저 아이도 학교에서는 수많은 아이들 중 한 명이고 퍼즐의 작은 조각이겠지만 집에서는 다 귀한 자식이겠지. 아침마다 머리를 만져주고 하나라도 더 좋은 걸 먹이려고 하겠지.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양분 삼아 자란다는 생각을 하며 학교를 끼고 돌아 계속 걷는다. 노래가 끝나고 방송부원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책 읽는 듯 단조롭고 말투가 빠르다. 조금 천천히 리듬감있게 말하면 듣기 좋겠다. 그래도 저 서투른 경험이 쌓여 점점 능숙해지겠지?
놀이터를 지나친다. 아침이라 아이들은 없고 어르신 몇 명이 운동기구를 타거나 벤치에 앉아 있다. 작년 여름까지 놀이터에는 튼실한 냥냥이가 텃줏대감처럼 양지바른 곳에서 몸을 길게 늘여 해바라기를 했었는데 몇 달 전 사고로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이제는 볼 수가 없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냥냥이를 상상한다. 곧 무성한 나무그늘 오솔길로 들어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다. 이곳을 지날 때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것 같다. 여름, 가을에 누릴 수 있는 혜택이지만 무성한 나뭇잎들은 곧 낙엽이 되어 떨어질 거다. 언제 나뭇잎이 달려있었나 싶게 겨울이 되면 가지가 앙상해지겠지. 대형 거미줄이 눈에 띈다. 거미 두 마리와 밤새 거미의 만찬이 된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덩어리가 붙어 있다. 어두운 밤 거미들이 합심하여 사냥을 하기 위해 이렇게 큰 거미줄을 짰을까. 지금은 목적을 달성하고 배가 불러 자고 있을까.
눈에 보이는 것을 보며 보이지 않는 시간을 상상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계단 12층을 올라 현관 앞에 도착한다. 아침 산책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