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름
1954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옹색한 시골집에 계집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영숙이었다. 으레 동네 여자아이들의 이름은 영자, 말자, 순자, 정자 등...... 비슷비슷했다.
최영숙.
나보다 스물셋이 많은 엄마의 이름이다. 외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동네에 차고 널린 이름이지만 그 의미와 애정은 각별했다.
외할아버지는 글을 깨나 읽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즐겨 보던 책 중에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라는 지금으로 치면 연애소설책이 있었다던가. 그 이야기 속 주인공이 '영숙'이었다. '여자 주인공 영숙이, 여자의 몸으로 세상을 구한 희대 영웅' 그 시절 여자 영웅 이야기는 드물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가 애정으로 지어준 '영숙'이라는 이름은 호적에 올라가지 못했다. 엄마는 결혼할 때 혼인신고를 하면서 호적신고가 안 되어 있고, 영숙이 아니라 연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엄마보다 두 해 전에 태어나 얼마 못 살고 죽은 언니의 이름이 '연자'이다.
죽은 언니는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다음 태어난 딸 출생신고를 하지 않다니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먹고살기 바빠서였을까. 무지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식도 많이 낳고 그만큼 병으로 많이 죽던 시절이라 그랬을까. 뭐가 되었든 계집아이가 태어난 것을 대수롭게 여긴 것만은 분명하다.
내게 엄마는 평생 '최연자'였기에 얼핏 한 두 번 들은 영숙은 그저 집에서 부르는 아명인 줄 알았다.
이름에 관한 사연을 알게 된 나는 엄마에게 속상하지 않으냐고 물어보았다.
"엄마, 남의 이름으로 평생 살았는데, 안 억울해?"
엄마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땐 다 그렇게 살았는 걸 뭐."
억울한 것도 모르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언니의 이름과 호적으로 살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 흔하지만 세상 어떤 이름보다 특별한 '영숙'이란 이름에 위로와 사랑을 보낸다.
1.프롤로그
https://brunch.co.kr/@miyatoon/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