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엌

프롤로그

by 연은미 작가
영숙01.jpg

소유하는 물건, 장소는 주인을 닮는다. 같은 기종의 핸드폰이라도 누구 건 만질 때 산뜻하고 누구 건 그렇지 않다. 자동차를 타 보아도 주인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중 부엌만큼 안주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장소도 드물 것이다.


안 주인, 엄마! 엄마의 부엌을 떠올려본다. 어릴 적 엄마의 부엌은 늘 정갈했지만 삭막하고 냉기가 흘렀다. 그 냉기는 비단 허름한 부엌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주위의 평을 들었으나 엄마에게는 그뿐이었다. 엄마랑 대화가 통할 나이가 됐을 때부터 가끔 넋두리를 하셨다.

“너네 아빠는 정이 없었어. 그래도 애들 아빠라고 일 끝날 때 맞춰 니들 셋 앞세워 마중을 나가면 한 번도 반가워하며 들어 올려 안아 준 적이 없었다”


사랑의 바탕도 없이 자식 셋과 씨름하던 젊은 여자는 고단했고, 그 고단함은 묵직한 한숨이 되어 그녀의 주위를 채웠다. 팽팽하게 당겨진 낚싯줄처럼 긴장감이 꽉 찬 엄마의 부엌은 차갑고 건조한 회색빛이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나는 엄마의 나이를 훨씬 지나 내 부엌을 가지고 있다. 결혼을 하고 세 번의 이사를 했다. 가만히 떠올려 보니 시기에 따라 부엌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첫 번째 부엌은 먹기 위해 억지로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직업인으로 우선해 살았기에 부엌은 관심영역 밖이었다. 아이 둘을 낳고 온전히 아이들에게 나를 내어줄 때인 두 번째 부엌은 정리되지 않고 늘 산만했다. 육아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뒤죽박죽 공간이었다. 세 번째가 지금의 부엌이다.


요즘은 두 아이와 남편에게 한 발짝 떨어져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기이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바뀐 곳이 부엌이다. 부엌은 작은 미션들을 시도해 볼 수 있는 호기심 공간이 되고 있다. 또한 ‘비움’과 ‘숨김’의 부엌이다. 소중한 것은 소중하지 않은 것을 비움으로서 찾을 수 있다. 미련에 걸려 비울 수 없는 것들은 안으로 숨김으로서 일단은 비움의 상쾌함을 맛본다. 내 마음대로 행할 수 있는 부엌, 그 자유가 좋다.


엄마의 회색빛 부엌 속에서 자란 나는 생각한다. 내 부엌은 무슨 빛일까? 내 부엌은 아이들에게 어떤 색으로 기억될까? 부디 따뜻한 색으로, 무지갯빛처럼 재미있는 공간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깨끗하고 정갈한 부엌도 좋지만 아이들과 자유로운 색을 덧입힐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장소는 곧 그 사람이다. 자신이 결정하고 선택한 것들이 물리적으로 놓이고 기운이 그 공간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충만하게 사랑을 주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어두운 그림자가 자꾸만 덮쳐왔다. 그림자를 걷어내고 훌훌 나아가고 싶었다. 잊고 있던 어린 시절 엄마의 부엌이 떠올랐다. 냉기가 흘렀던 엄마의 회색빛 부엌을 마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우리 집에 마실을 온 엄마에게 종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엄마, 어릴 때 이야기 좀 해 봐요. 연자라는 이름은 누가 지어주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