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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May 09. 2022

'책'과 '사람'은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까?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방문객>     



    독서멤버 조선미 언니가 낭독해줘서 알게 된 시다. 새로운 멤버가 왔을 때 낭송해주었는데 함께 들었던 우리는 감동으로 울컥했다. 시 한 편에 사람을 보는 관점이 순식간에 달라지다니 신기하다. 우리는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사람을 통해서 치유된다. 그 이유를 알겠다. 한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게 엄청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우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는 새로운 장소에 나를 데려다 놓았을 때, 즉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부터 시작된다. 운은 사람을 통해서 온다는 말, 사람이 복을 불러다 준다는 말을 예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일 특성상 관계 테두리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을 뿐 그동안 나에게 새로운 세계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문 너머에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 크고 작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태어난 환경, 부모님의 가치관,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 등이 경험이 되고 경험은 무의식에 축적되어 가치관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각자만의 인생 주기를 지나고 있다. 이제 시작과 끝이 있는 길의 어느 점을 통과하는 나를 카메라 렌즈를 쭉 빼서 멀리서 한 번 바라보자. 우리가 지나온 길, 우리 앞에 펼쳐진 길이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지하게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나는 나머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곳에 나를 데려다 놓고 싶은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 말이다.


    생각과 느낌, 행동이 융합되어 진심이 되는 것. 온전한 마음에 다가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은 글은 감동이 없다. 솔직하지 않은 글, 꾸민 글은 독자가 금방 눈치를 챈다. 그래서 글이 곧 내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글로 써서 책을 쓰는 것, 그것을 전문가라고 한다. 누구나 가장 잘하는 것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새벽에 일어나 뭐라도 시작하려는 마음, 일요일 새벽에 길을 나서는 마음, 낯설고 겁도 나지만 새로운 곳에 나를 집어넣는 마음에는 온전한 내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가면을 쓰지 않고 나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몸을 일으켜 노력했던 몇 년, 나를  움직이게 한 힘은 결국 자기애(自己愛)였다.       


      카메라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기억을 재빠르게 앞으로 돌려본다. 나 자신이 사랑스러웠던 순간, 자랑스러웠던 순간, 빛났던 순간을 소환한다. 맘껏 드러내지 못했던 많은 장면이 떠오른다. 그 장면의 끝에는 복슬복슬, 꽃 치고는 특이한 형태의 맨드라미가 있다.         

 

      6살 어린 나를  위로해줬던 맨드라미를 떠올리면 자동 입력된 것처럼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상자가 보인다. 정말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내가 바라는 창조성이 가득한지 확인해보고 싶지만, 실체가 두려워 지나가던 누군가 내 상자를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누군가 상자를 열어줬어도 나는 이게 진실이 맞느냐고 의심을 했을 것이다. 


    

     눈을 감고 호흡을 깊게 한다. 상자를 바라본다. 과거에 무수히 봤던 상자와 똑같은데 예전만큼 불안하지 않다. 아마 상자는 처음부터 변한 건 없을 것이다. 내가 변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게 된 나 말이다. 나는 상자를 열기 위해 뚜껑에 잡는다. 속이 꽉 차 있지 않으면 어떤가. 앞으로 내가 바라는 것들로 채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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