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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Apr 26. 2022

지금의 내 나이가 딱 좋아!

가장 젊은 오늘의 나를 사랑하자

     

     20대 만화가로서 바쁘게 살았던 하루를 닮아가는 요즘이다. 그런데 확연히 큰 차이가 있다. 

20대의 나는 맡겨진 것을 고군분투하며 겨우 해나갔는데 지금의 하루는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지고 있다.     


     만화가, 캐릭터 작가, 이모티콘 작가, 여행 작가,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살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본 적이 없다. 그만한 에너지가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지만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들이 재미있다는 거다. 요즘은 낮잠을 버티며 일을 하기도 한다. 빨리 해내고 싶어서 잠을 참게 된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는 못 할 일이다.  

    

     몇 년 전 YMCA 클럽인 등대 모임, 사귐 활동에서 ‘열두 살의 나에게 편지 쓰기’ 시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이야기, 좋았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열두 살의 나를 떠올리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원하지 않게 펼쳐진 상황 속에서 쪼그라들고 자신감 없는 어린 내가 보였다. 여섯 살에 맨드라미를 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반짝반짝하던 아이가 빛을 잃어가는 게 보였다. 가볍게 그 시절이 좋았다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쓴 글을 읽다가 울컥해져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인생에서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나는 마흔 중반이 넘은 지금 내 나이가 딱 좋다.  결정권 없이 내던져진 생채기 가득한 십 대를 지났고, 중요한 게 뭔지 몰라 무식하게 돌진하며 삶의 균형이 무너졌던 이십 대를 지났다. 작은 아이 둘을 어쩌지 못해 아이도 울고 나도 울던 외로웠던 육아기인 삼십 대도 지났다.  마흔 생일날 생애 처음 돈 주고 헬스를 시작하고 이어 수영을 2년째 하면서 30대보다 오히려 건강해졌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멋진 내가 되고 싶어서 이른 잠을 이겨내며 침대에서 일어난다. 

    


     40대는 아무리 노력해도 치유하지 못한 내 안의 상처를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시점이기도 해. 즉 오랜 상처를 그냥 나의 일부로서 가지고 살자고 결기 있게, 밝게 체념할 줄 알아야 해.

....아무튼 내면의 대청소를 마친 상태에서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돈해야겠지.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임경선, 요조의 교환 일기 중에서>

 

    


     지금도 아이들은 나에게 나이에 맞는 과제를 던져주지만, 예전만큼 내가 부족한 탓이라고 괴로워하지 않게 됐다. 책을 꾸준히 읽고 자기 긍정을 확언하고 쓰고 되새기며 나는 내가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사랑해가는 중이다.     


     지금 우리 집은 지저분해도, 깨끗해도 내 손을 탄다. 몇 년 동안 조금씩 물건을 버리고 정리해서 화장실에 딱 필요한 몇 가지 물건만 놔두었다. 한동안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낮에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마다 깨끗한 화장실을 둘러보면 좋은 에너지가 가득 찬 것 같아 흐뭇하다. 마음만 먹으면 공간을 깨끗하게 손질할 수 있다. 내 손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내 공간이 있어서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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