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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은미 작가 Jan 11. 2023

나는 누구일까요?

귀여운 동화 한 편

사방이 깜깜해.

얼마나 오랫동안 깜깜한 곳에 있었는지 나도 잘 몰라.

그냥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처럼 나는 이곳에 있었어.

아, 걱정하지 마.

깜깜하지만 무서운 곳은 아니야.

나를 지켜주는 안전한 곳이거든.

나는 목마름 없이 잘 자라고 있어.

누군가 나를 알뜰히 돌보고 있는 게 느껴져.

이곳은 따뜻하고 포근해. 계속 이곳에 있어도 좋을 것 같아.


사르르르르 파르르

얼마 전부터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일까?

여러 소리가 뒤섞여있어.

갈수록 소리가 점점 커져.

가만가만 귀를 기울여보니 ......

맞아. 이것은 바람소리야. 바람이 나무를 훑으며 지나가고 있어.


끽 끽, 깍 까가각, 피윳, 피윳

이건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토독, 톡, 도토독.

낙엽을 밟으며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

그리고

아주 작지만 분명 애벌레가 꿈틀대는 소리야.


새끼손톱만큼 얇고 작았던 나는 무럭무럭 자랐어.

신기하게도  내 몸이 조금씩 자라면서 나를 감싼 집이 내 몸에 맞게 커져.

어느새 내 몸이 토실토실해졌어. 그런데 이제 집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아

틈이 없어서 답답해. 너무 비좁아.


어느 날 쩍 하는 소리가 들렸어.

실 같은 틈 사이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어.

눈을 뜰 수가 없어. 이 따뜻하고 눈부신 건 뭐지?

하얀빛은 내 몸을 온통 감쌌어. 나는 서서히 눈을 떴어.

하얀색 빛줄기 너머 파란색이 눈에 들어왔어.

저것은...


그래, 저것은 하늘이야.

누군가 말했어.


누구야? 누가 말하는 거야?

난 너를 키운 밤나무란다.

아, 그럼 시원한 물을 준 게 너였어?

그래. 밖으로 나온 걸 환영해.


아, 그렇구나. 나는 밤이야.

내가 살던 집은 밤송이였어.

반질반질 윤기나는 밤은 뾰족한 밤송이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저 위에 있는 게 하늘이라고?


그래, 하늘이야. 하늘은 수십 가지 색깔인데 오늘은 투명하게 맑은 빛이네.

밤나무가 말했어.

처음 본 하늘은 가슴 시리게 아름다웠어.


하늘에 둥실둥실 흘러가는 건 구름이란다.

구름... 솜사탕 같아.



갑자기 밤송이가 흔들거렸어. 내 몸도 함께 기우뚱하더니

갑자기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땅으로 떨어졌어.

하지만 이미 수많은 나뭇잎이 겹겹이 쌓여 뾰족한 내 집을 가뿐히 받았어.

 

이제 세상 구경할 시간이야.

멋진 여행이 되길 바라.

널 위해 기도할게.


하늘의 따뜻한 바람이

그대 집 위로 부드럽게 일기를

위대한 신이 그 집에

들어가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기를

그대의 모카신 신발이

눈 위에 여기저기 행복한

흔적 남기기를

그리고 그대 어깨 위로

늘 무지개 뜨기를

(체로키 인디언 축원 기도)


나무는 낙엽 위에 누운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며 축복해 주었어.



나는 푹신한 풀잎 위에 누워서 하루종일 하늘을 바라보았어.

밤나무 말이 맞았어.

아침 하늘, 저녁 하늘, 비 올 때 하늘, 개었을 때 하늘,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하늘은 다채로운 색으로 바뀌었어.

 

어느 날 작은 여자 아이가 나를 주웠어.

"엄마, 밤이야. 너무 귀여워.. 나 가질래."

"어머나, 튼실하고 귀여운 알밤이네. 꼭 우리 딸 닮았다."

아이는 소매로 반들반들하게 나를 닦더니 주머니에 쏙 넣었어.


와... 드디어 여행이 시작되었어.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난 기대와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렸어.


아이의 주머니에 실려 도착한 곳은 아이의 방 창문이야.

아이는 나를 반질반질하게 닦아서 창문가에 올려놓았어.


그날 아이의 일기에는

산에서 나를 만난 일, 집으로 데려온 일이 그림일기로 그려져 있었어.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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