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영원한 친구
비 오는 월요일, 둘째 딸을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길... 생각해보았다. 최고의 인연이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인생의 모든 재미를 잃고 삶의 소망이 없던 만 서른에 만나,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인생의 스승님. 그분을 만나기 전과 후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 엄마, 나를 엄마 되게 해 준 내 딸들.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유일한 여자로 자라면서 언니나 여동생 있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물론 오빠 친구들, 남동생 친구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놀았고, 덕분에 남자에 대한 서먹함 없이 자랐지만 맞벌이로 바빴던 부모님의 부재로 늘 외로웠다. 맞딸인 엄마와 막내 이모를 빼면 6명이 줄줄이 아들인 외가와 '아들 아들 딸 딸 아들 아들 딸' 7남매인 친가의 아들 밭 사이에서 태어난 내가 딸을 둘이나 낳을 줄은 둘째가 나오기 전까지 꿈에도 몰랐다.
마음 편히 이야기 나눌 사람 없이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같은 성을 가진 자식을 낳아서 좋기는 했으나 내 인생사전에 없었던 '자매'라는 단어가 현실이 되면서 삶은 삽시간에 수렁으로 빠졌다. 쌍둥이보다 키우기 어렵다는 22개월 차이 연년생인 두 명의 아기가 한 명의 엄마와 한 집에서 24시간 지내야 하는 3개월 동안,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전까지 가히 암흑이었다. 관리사님 고용할 비용 6백만 원 아낀다고 첫째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아 그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 나게 미안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의 놀이가 시작되었다. 첫째는 아기 인형인 콩콩이를 붙잡아 앉히고, 둘째는 콩콩이의 입에 숟가락을 갖다 대며 이유식을 먹였다. 둘이 논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래서 둘이 좋구나! 첫째가 둘째를 밀어서 머리박기를 수십 번, 바운서를 뒤집어엎고, 수유쿠션에서 끌어내리고, 나도 엄마가 필요하다며 매일 밤 울기를 반복했던 악몽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며 만감이 교차했다. 얘도 울고 쟤도 울고, 얘도 싸고 쟤도 싸고. 그때는 매 순간이 그랬다.
5초마다, 5분마다, 50분마다, 5시간마다 점점 싸우는 텀이 길어져서 살만하다 싶더니 만 3세, 만 5세 자아 중심성이 극대화되는 시기가 되자 둘은 또 박 터지게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은 이렇게 싸우고 또 싸우지만, 그리고 앞으로 15년은 족히 더 싸울 수도 있지만 둘 다 성인이 되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될 거라는 것을.
누군가 그러더라. 기쁨은 현재의 일에 대해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될 일을 미리 기뻐하는 거라고. 그래, 지금은 너희 자매의 난에 온 마음과 정신과 육체가 너덜너덜하지만 한 20년이 지나면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사이가 될 거야. 그때가 될 때까지 엄마는 견디고 또 견디고 더 견뎌서 최고의 인연으로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 첫째도 둘째도 엄마에게 와줘서 너무 고맙고, 딸딸이 엄마로 살아가게 해 줘서 또 한 번 고맙다. 너무 부족했던 엄마지만 엄마는 항상 너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너희 둘을 한 팀으로 만들어 줄 새로운 경쟁자, 동생을 기다리고 있어. 자매가 될지, 남매가 될지 모르지만 너희가 셋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꼭 보고 싶어 졌어. 서로가 서로에게 최고의 인연이 되도록 우리, 오늘도 내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