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ye Lee Feb 15. 2022

차 없는 우리 가족에게 야외생활이란

자동차 버리기


 우리 가족이 밖을 나다닐 수 있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발로 걸어 다니기, 둘째 자전거 타기, 셋째 대중교통 이용하기 그리고 넷째가 지인 찬스이다. 일본으로 건너와서 차가 없는 우리는 네 가지를 골고루 이용하며 일본 생활에 적응해가던 6개월 차에 긴급사태를 맞았다. 셋째와 네 번째의 길이 막히면서 우리의 생활 반경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생활에 꼭 필요한 마트, 전철역, 시청, 놀이터, 생활용품점이 모두 걸어서 10분 이내라는 점이다. 비교적 저렴하고 아이들과 함께 갈만한 음식점도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선택지가 세 군데나 있다. 비록 더 유명하고 더 맛있고 더 호화스러운 곳은 가지 못하지만 허락된 환경에서 우리 네 식구는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집 바로 앞에 놀이터가 있다는 점이다. 지도에 보면 water park로 표시되어 있어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우리 동네를 소개했을 때 워터파크라고 하니 얼마나 큰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 워터파크란...! 아니 그게 아니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어 워터파크라고 알려줬더니 황당해하던 그 표정에 놀이터를 볼 때마다 한 번씩 웃음이 난다.



대충 옷을 입혀 맨션 밖을 뛰어나가면 워터파크에 있는 미끄럼틀과 그네, 물. 모래놀이터가 아이들을 반긴다. 물론 팬데믹이 터지고 한동안은 움직이는 그림처럼 바라보기만 하고 쉽사리 데리고 가지 못했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에서 보낼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순간이 왔다. 007 작전 마냥 사람이 없거나 한산할 때에만 마스크를 쓰고 가서 놀다가 사람이 많아지면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온다. 그래도 집에서 자매의 난을 지켜보는 것보다 백배 낫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이 둘을 자전거 뒤에 태우면 드넓은 '카스가 공원'에 갈 수 있다.  가다가 마트에 들러 어른들이 마실 두 잔의 커피와 어린이들이 마실 두 팩의 음료수를 골라 볕이 잘 드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 오후의 여유를 갖는다. 자리를 뜨기 전, 우리는 셀프 모드로 한 장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지극히 소박하고 일상적인 시간이었음에도 달짝지근한 음료수를 마신 게 좋았는지 넓은 공원에 간 게 좋았는지 그 이후로는 집 앞 공원을 두고 카스가 공원에 가자는 말을 자주 한다. 우리의 일상이 한 장의 사진이 되는 순간이 이런 게 아닐까.







                                                           카스가 공원 분수대



 생활용품점이나 마트를 갈 때 자전거를 놓고 일부러 걸어가기도 한다. 물론 힘도 더 들고, 시간도 더 걸리지만 손을 잡고 걸어가며 거리와 풍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자전거를 타고 갔을 때에는 보지 못했던 더 작고 사소한 것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주기도 한다. 첫째가 과일가게를 걸어가는 길에 보았던 청둥오리 2마리 이야기를 신나게 할 때면 '걸음의 미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고 차 없는 우리의 야외생활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다. 애들은 우리도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동차 판매점을 볼 때마다 한다. 비를 맞으며 자전거나 걸어서 통학해야 하는 비 오는 날이면 쫄딱 비를 맞고 들어오는 남편과 레인 커버 안에서 땀범벅이 된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비를 편안하게 막아주는 자동차가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결핍이 주는 어려움과 힘겨움이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감사와 기쁨, 추억을 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오늘도 차 없이 밖을 나서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딸딸이 엄마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