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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e Lee Feb 16. 2022

2020년,
너는 나를 집구석으로 몰아넣었지


 12월이 찾아오면 언제나 만감이 교차한다. 그리고 늘 다사다난 했다고 말하게 된다. 올해는 뭐 전세계 누구에게나 엄청나다.  작년에 일본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꿈을 펼칠 시기에 날개가 꺽여버렸다. 계획대로 된 것은 하나 없지만 평생 마음에 남을 감동의 시간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바람이 나를 노트북 자판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작업실의 추억



11월에 전자키보드가 내 작업실로 들어왔다. 남은 올해 목표를 딸과 함께 연주하고, 딸을 위해 결혼식 축하영상 남기기로 정했었다. 모두가 집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시간에 더듬더듬 건반을 누르며 일 년동안 힘들고 지쳤던 마음을 녹여내기도 하고, 딸들이 귀가하면 유치원에서 배운 일본동요나 한국동요를 부르거나 악기연주를 하며 우리들만의 특별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신나게 연주하던 아이들의 미소가 햇살처럼 반짝거리고 너무 따뜻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외손녀들이 보고싶은 친정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불현듯 생각이 났다.


"엄마, 크리스마스 선물"


핸드폰을 보면대 위에 올려놓고, 피아노 전원 버튼을 누르고, '저들 밖에 한밤중에' 찬송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안경을 들고 말없이 눈물을 닦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다.  왜 딸들을 위해 피아노를 쳐 줄 생각만 하고 딸로서 엄마에게 무언가 해 줄 생각은 못했던걸까. 이걸로 됐다. 피아노, 너는 그것만으로도 제 값을 다했다.






거실의 추억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거실에서 책을 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어느 날 문득 내 모습을 보니, 하루에 2권 읽어주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귀찮다는 핑계로, 그림책은 그림만 보는 책이라는 헛소리로 함께 보기 보다는 혼자 책 보라는 말만 하고 있었다. 마음이 온통 상황과 환경에 빼앗겨버려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서 책 볼 여유가 없었나보다.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며 다시 하루에 2권은  같이 보자고 약속했다. 목소리 변조도  못하는데 고음, 저음, 콧소리,  목소리를 뒤죽박죽  섞어가며 읽어주니 낮은 목소리로 '아저씨~' 해도 까르르 쓰러진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과 염려와 걱정들로  자신을 채우며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죄책감이 밀려온다.  미안함을 기억하고 ‘하루 2권의 약속 신실하게 지켜나가며  새로운 추억으로 그동안의 실수와 상처를 덮어가리라 다짐해본다.







부엌의 추억



하루에 왜 삼시세끼를 꼭 먹어야하나. 아침 먹고 치우면 점심. 점심 먹고 치우면 간식 달라, 간식 먹고 또 조금 지나면 어두워지면서 6시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저녁 먹고 또 치우며 자고 일어나면 매일의 시간이 거짓말처럼 반복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긴급사태선언으로 올 봄에는 남편이 집에서 공부를 하게되었다. 올해 내에 요리금손이 되겠다는 포부와 함께 하루의 한끼라는 위로와 일용할 양식을 주었다. 엄마가 작업실에서 핸드메이드를 만들며 낑낑거리다가 끼니 때를 놓치면 첫째 딸이 식탁 의자를 끌어다가 밥솥에서 밥을 그릇에 담고, 냉장고에서 케찹과 모짜렐라 치즈를 꺼내 비벼서 동생의 밥을 차려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어른들처럼 요리가 하고 싶은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준 머릿수건과 백엔샵 앞치마를 나란히 입고 식탁에 앉아 간식으로 식빵 피자,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엄마가 잘게 썰어 건네주는 김밥재료들을 김에 돌돌말아 꼬마김밥도 만들어 먹으며 요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우동 면과 간장만 넣고도 얼마나 뿌듯해하는지 뒤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피식 웃음이 난다.







굿바이, 2020



2020년을 보내주려니 왜 괜시리 눈물이 글썽일까. 강제적으로 같이 하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만큼 그야말로 미운정과 고운정이 옴팡지게 들었고 그 어느 해보다도 서로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됐다. 늘 그렇듯이 시작은 어색하고 끝은 아쉬운 한 해가 말없이 저물어간다.  



호주 유학 시절에 만난 70대 할머니 친구, 오드리와 피자를 먹으며 했던 질문이 문득 생각난다. 인생을 사계절로 비유했을 때, 겨울을 지나가는 그녀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What is the most impotant thing in your life?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 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셨다.

 "Family 가족"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듯이 올해의 아쉬움과 후회를 교훈 삼아, 2021년에는 또 어떤 우리를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임을 항상 기억하고 다시오지 않을 우리들의 시간들을 부드러운 말과 따뜻한 행동으로 채워가며 어느덧 다가올 나의 인생의 끝자락에도 오늘처럼, 나의 올드 프렌드처럼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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