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실 목표를 세운다고 목표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목표를 세우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부터 시작하니 어떤 키워드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글은 쉽사리 잘 써지지 않은 채 하루하루 날짜만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목표를 세운다고 꼭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올 한 해를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한 해를 살아간다면 적어도 계획한 그 부분에서는 좀 더 성숙한 나를 대면할 수 있지 않을까 마음 먹으니 그러면 올 한 해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ㅡ 혼자만의 물음표를 던지게 되었다.
이번 주 월요일 아침, 정신없이 아이들의 짐을 챙겨서 야심차게 밖을 나왔는데 아뿔사! 자전거가 없다. 어이없게도 전 날 외출할 때 전철역에 세워놓고 월요일 아침이 될 때까지 남편도 나도 새카맣게 까먹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둘째야, 손을 잡아라. 2키로 남짓 떨어진 보육원을 둘째딸과 함께 그렇게 걸어가게 되었다.
5살 배기 어린 아이가 2키로나 되는 길을 걸어간다는 건 쉽지 않지만, 이미 9개월동안 수없이 오갔던 길이기에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면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고 한 번씩 힘들다는 아이를 독려해가며 그 길을 쉼없이 가고 있었다. 인생도 이렇게 목표점이 분명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지금은 이렇게 익숙한 이 길도 처음 왔을 때는 인터넷으로 지도를 충분히 숙지하고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한 번에 보육원을 찾지 못해 결국 오리엔테이션에 늦었다. 인생사, 세상사 또한 시작은 낯설고 생소하여 실수도 하지만 한 번, 두 번 반복함 속에 익숙함도 생기고 노련함도 갖추며 여유를 찾아가는 것의 반복이겠구나 싶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영문도 모르고 따라오던 딸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이 알파벳 P라고 내 얼굴을 보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할 때 내 마음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그래서 '아! 올해 목표를 작은 것에도 감사하자'로 정하려고 하는데 이내 마음 한 켠의 불편함을 느꼈다. 곰곰히 그 불편함을 들여다보니 입으로는 많이 가지지 않아도 괜찮아', '소소한 것에 감사하면 일상의 행복을 맛보며 살 수 있을거야' 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난 돈을 많이 벌어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싶고,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환경에서 윤택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내 안에서의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데 내 안의 욕망이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아 괴로움이 계속 되었다. 여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또 고민해보았다. 고민으로는 부족해서 여러 사람의 글도 읽어보고, 강의도 들어보았다. 남편과 깊이 대화도 해보았다.
철없는 이십대를 보내던 나에게 사람과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삼십대 선배 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에게 humble 겸손한과 dignity 존엄성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 두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번에 올해 목표를 정하면서 깨달은 건, 내 안에 충돌했던 자족하고자 하는 마음과 더 갖고자하는 욕망 사이에서 나에게 필요한 덕목이 바로 '겸손'이라는 것이다. 말로만 나를 낮추거나 소유욕을 누르고 감사를 선택하는 단순함을 넘어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싶어졌다. 이토록 가볍게 여겨지는 나의 존재가 올 한 해를 보내며 겸손을 간절히 소망하고 산다면 처음에는 실수와 좌절도 있겠지만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포기하지 않고 가다보면 한 걸음이라도 겸손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