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텔레비전에서 ‘한끼줍쇼’, ‘밥은 먹고 다니냐’ 등 ‘밥’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만큼 밥은 우리에게 일상이며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양식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마력이 있다. 식사를 하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서로에게 진심이 전해진다. 오늘 용산에서 100여명의 거리의 노숙인을 위해 26년 간 무료급식을 하고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여운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왜 멀쩡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밥을 줘서 무기력하게 계속 그 자리에 앉히게 하느냐'는 것이 내 안에도 있었던 동일한 의문이었는데, 그 분들은 전혀 멀쩡한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고, 머리가 아픈 인생에서 모든 것을 잃고 바닥에 주저앉은 '아픈' 사람들이었다. 그 몸도 마음도 병든 사람들에게 도움은 커녕 무리 속에 섞여 손가락질하고 욕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작고 부끄러워졌다.
오늘 아침, 둘째 아이 등원을 위해 밖을 나섰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자전거를 보니 거센 바람에 자전거가 넘어지면서 어느새 벨이 부서지고 없었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속이 미싯거리고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단 한 번의 바람에도 이렇게 휘청이는데 매일 이 거센 바람을 맞으며 거리에서 지내시는 분들을 생각하니 내가 그토록 바랬던 겸손이라는 것은 너무 고상하고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2억의 전세에서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0만원으로 전세자금을 털어가며 묵묵히 노숙자들의 끼니를 챙기셨던 그 분들의 삶을 그려보자니 실컷 먹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배불리 먹으며 해 들어오는 맨션 6층에서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이미 많이 가진 자라는 생각이 든다.
급식을 운영하시면서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였다. 이 곳에서 밥을 먹고 용기를 내서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놀라운 삶의 변화가 일어났다. 한 남자분은 가정으로 돌아가서 고아원에서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집 나간 아내도 돌아와 가정을 다시 세웠고, 한 사업가는 직원들과 봉사활동을 마치고 500만원을 내밀며 IMF 때 여기서 6개월동안 밥을 먹었다며 밥값이라고 건넸던 뭉클한 사연도 있었다.
첫째 딸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냐고 물어보면 숨도 쉬지 않고 엄마라고 말한다. '엄마가 왜 좋아?' 물어보면 '엄마는 밥을 주니까' 라고 답한다. 아이는 이미 알았던 것 같다. 엄마가 밥만 주는 것이 아니라 밥에 마음을 담아 준다는 것을 말이다. 무슨 끼니가 이리 자주 돌아오냐며 점심은 뭐 먹지, 저녁은 또 뭘 할지 늘 투덜대듯이 밥을 준비할 때도 많지만 우리 식구들이 이 밥을 먹고 건강하고 또 힘내서 하루를 살기를 바라며 시간과 사랑을 나누듯이, 노숙인들에게 밥을 먹임으로 그들이 건강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가족에게 줄 수 있는 사랑으로 헌신하시며 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이 참 감동이 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문 밖을 뛰쳐나가 노숙자에게 향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소중한 인연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그리고 20대에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표지를 보며 가난한 아이들을 향해 품었던 마음을 다시 꺼내어본다. 비단 물질적인 가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마음이 가장 가난한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위해 어떠한 모습으로 행동할 수 있을 지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