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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e Lee Mar 12. 2022

겪어본 사람만 안다

계류유산 아픔 극복기


 죽을 때까지 유산은 아픔으로만 남아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우연히 맘 카페에서 출혈이 심하다며 유산이 의심된다는 게시글을 그냥 넘길 수 없어 댓글을 달았다. 나도 같은 일을 겪었고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남겼고 나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회원들이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온라인 공간에서 그분을 위로하였다.




계류유산이 되기까지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기에 아이를 빨리 갖기를 원했고,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 신혼여행 중 평생 겪어보지 못한 심한 편두통에 시달렸고 한국에 돌아와서 임신 테스트 후 두 줄을 보았다. 생명을 품는다는 신비한 경험을 시작으로 남편과 함께 태명을 짓고, 아름다운 축하의 꽃다발을 보며 태중의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기쁨도 잠시, 초음파에서 심장이 뛰는 아이를 확인한 후부터 심한 입덧에 시달려야 했다. 밥을 먹지 못하는데 또 속이 비면 울렁거리고, 부엌에서 냉장고 문이 열릴 때마다 그 냄새가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이 또한 뱃속의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 여기며 견디고 견뎠다. 자궁에 피가 고여 있었기에 조금씩 출혈이 있었지만 심하지 않았기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배가 심하게 아팠다. 6년이 지난 지금도 그 고통이 선명하게 기억될 정도로 진한 아픔이었다. 자궁이 커지면서 배가 아프다고 들었기에 이 또한 견뎌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2주 차 월요일부터 피의 양이 점점 많아졌다.  검진은 금요일. 초음파 결과, 아이의 크기는 10주 정도에서 멈춰 있었고, 아이의 심장은 뛰지 않았다. 계류유산이 된 것이다.



그날 오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소파수술을 하였다. 갑자기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이 없었고, 처음으로 그 차가운 수술대에 올랐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온 게 언제죠?" 의사선생님의 질문과 표정만 기억이 난다. 수면마취를 하고 팔과 다리를 침대에 묶었지만, 통증에 민감한 나는 팔과 다리를 심하게 흔들었다고 수술 후에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다. 수술을 마치고 배가 너무 아파서 걸을 수조차 없어 남편의 손에 질질 끌려 겨우 병실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고, 10명 중 3명은 겪는 흔한 일이라고 담담히 말씀하셨다. 슬픈 표정으로 앉아 있는 우리 부부에게 태아가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기 때문에 유산이 된 것이니 3개월 동안 몸을 잘 추스르고 다시 임신하시면 된다고 더 단호하게 설명하셨다. 머리로는 다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 100년을 사는 사람도 있고 100일을 사는 사람도 있는 거야, 우리 아이는 12주. 너의 생명은 짧았지만 기쁨이었고,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편지를 썼다.



하지만 이 존재가 너무 기뻤던 만큼 예기치 못했던 유산의 아픔과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없이 점점 커져만 갔다. 유산도 출산과 비슷한 거라고 미역국을 매일 먹으며 몸의 회복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지내던  수많은 날들 중, 문 틈 사이로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내 마음에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있다.



어려움이 왔을 때 모든 사람이 같은 질문을 한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주변이나 친지, 친척 중에 유산을 겪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고 누구보다도 건강하다고 자부하고 살았던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더더욱 충격이 컸다.



아이를 잃은 것도 괴로웠지만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 또 3개월 후 재임신이 되고도 다시 유산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유산의 그림자가 첫째를 품고 있던 10달 내내 따라다녔고, 출산 전까지 늘 쿵쾅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검진을 다녔다.





상처가 공감이 되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는 딸딸이 엄마가 되었다. 그때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첫째 딸을 낳고 키우면서 원망하는 마음은 조금씩 회복되었다. 하지만 어느 부모가 새아기가 생겼다고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아픔이 사라질까ㅡ 유산은 그저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로만 나와 함께 있어왔다.



한참이 지난 오늘이 되어서야 현재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분에게 나도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처음이다. 나의 상처가 상처로만 남아있을 줄 알았는데, 그 상처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손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음에 더 이상 유산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이제는 상처가 공감과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그리고 글을 통해 알리고 싶어졌다. 당신이 아프게 지나고 있는 그 슬픔을 나도 겪었고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지금은 많이 아프고 힘들지만 그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ㅡ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그 상처가 이해되는 날이 올테니 힘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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