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갈 짐, 버릴 짐

그리고 당연히 데려갈 '개'

by BAEK M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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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스타툰 개큰개파이 시즌2, 3화 (2020년 10월 9일 업로드)


출국 전, 5년간 살았던 집과 그 집을 채우던 물품들을 정리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로 물건을 보내는 것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우체국으로 보낼 수 있는 일반 EMS 우편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모두 중단되었다. 사용하던 용품들을 터키에 미리 보내 놓으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 터키로 미리 보낼 수 있는 물건은 오로지 '책'뿐이었다. 이제 물건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비행기에 직접 가지고 갈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처분할지.


값나가는 물건들은 팔거나,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깨끗한 옷가지들은 정리하여 근처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먼 훗날에 쓰기 위해 쟁여뒀던 생필품들, 비싸진 않지만 나름의 가치를 가지는 소품들은 당근 마켓에 중고로 내놓았다. 덕분에 종일 당근 마켓만 바라보는 날도 여러 날.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물건들은 카테고리별로 모아 무료 나눔을 했다. 그렇게까지 해도 남은 물건들은 결국 종량제 봉투로 직행했다. 들뜬 마음으로 샀던 앙증맞은 컵들, 소소한 추억들이 담긴 인테리어 소품, 계절이 바뀔 때만 기다리던 신발과 옷, 큰 기대를 품고 샀지만 제 역할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주방 용품들, 기약 없이 쌓아뒀던 비싼 화구들... 한때 집구석구석에 소중하게 모셔두었던 물건들이 쓰레기봉투에 모양새 없이 담겨있었다. 일상과 기억, 때때로 과했던 욕심들이 쓰레기봉투에 빼곡하게 들어찼다. 나는 슬쩍 눈물이 났다.


지난한 정리를 거쳤음에도 비행기에 이고 지고 가야 할 짐은 160kg에 육박했다. 옷가지, 밥솥, 전기장판, 이불, 비상약 등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들이었다.(고 자부한다.) 이민 가방 포함, 내 몸만 한 가방만 5개가 넘었다. 비행기에 오르는 날. 차 한켠에 높다랗게 가방들을 쌓아 올리고, 개의 캔넬과 그 안에 개를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은 그 어느 때보다 한산하고, 어딘지모를 차가운 풍경을 자아냈다.


사람보다 개가 출국 수속을 먼저 밟는다. 공항 근처를 서성이며 개가 마지막 한 톨의 오줌과 한 줌의 똥이라도 더 짜내길 기다리는 중에 항공사의 독촉 전화를 받고 급히 수속대로 달려갔다. 캐리어를 올리는 곳에 개를 올려 개의 무게를 잰다. 무게에 따라 수송 비용이 다른데, 최종 무게는 개+캔넬의 무게를 더해서 산출한다.

항공사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가 사람보다 먼저 비행기에 올라타야 한다. 항공사 스텝의 손에 실려 개가 먼저 비행장으로 들어갔다. 개는 캔넬 안에서 불안함에 힝힝 울고, 말 못 하는 동물 앞에서 나와 남편은 열심히 '파이팅'을 외쳤다. 멀어지는 개를 바라보며 우리는 그저 이 시간이 별 탈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전화기 너머로 멀리 딸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텅 빈 공항 안에서 엄마가 우는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나는 내 등보다 높은 가방을 울러 매고 고개를 떨군 채 울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것을 함께 안고 간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정신없이 걷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고 보면, 여태 소중하게 쥐고 온 것을 내려놔야만 할 때가 온다. 그리고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을 한 아름 안고 다시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을 떠나며 날 무겁게 했던 것들, 슬프거나 기쁘게 했던 많은 부분들을 덜어내고 와야 했다. 불 꺼진 공항을 지나며, 내가 내려놓고 온 모든 것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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