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에서 그냥 '개'가 되다.
출처: 인스타툰 개큰개파이 시즌2, 9화 (2020년 10월 30일 업로드)
"큰 개랑 살 수 있겠어?"
결혼 전 남편은 틈만 나면 테스트하듯 내게 질문을 던졌다. '개가 다 비슷하지 않나? [큰 개]라는 게 특별한 의미가 있나?' 여러모로 궁금했지만 크게 게의치 않았다. 그때는 큰 개와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개는 본디 얌전하고 착했으므로, 같이 사는데 유달리 어려운 점은 없으리라 기대하기도 했다.
결혼 후, 남편이 주구장창 반복했던 '큰 개'에 대한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1. 집에서 자리를 넓게 차지하는
2. 도시에서 지내기 썩 좋지 않은
결혼 후 터키에 오기 전까지는, 5년 동안 혼자 살던 오피스텔에서 신혼 살림을 꾸렸다. 별 다른 가구나 집기들이 들어온 것이 아님에도, 그저 남편과 개가 그 공간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 자리가 가득 찼다. 큰 개는 일반적인 '개'가 집에서 차지할 법한 공간이 아닌, 사람 한 명의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좁은 오피스텔에 3명이 사는 느낌으로 산 지 6개월- 조금이라도 넓은 곳으로 이사 갈 날만 나는 손꼽아 기다렸다.
사실 이건 그리 힘든 부분이 아니었다. 정작 힘들었던 건 큰 개를 데리고 밖을 나서는 게 큰 용기를 요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내가 살던 곳은 대게 그러하듯 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고층 주거 공간들이 밀접해있는 도시였다. 소형견은 흔히 볼 수 있었지만 대형견은 보기 드문 환경이었다. 개와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산책을 하거나, 길을 오갈 때 이유 없는 시선들이 점차 느껴졌다. 이따금 개 물림 사고 뉴스가 전파를 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시선에는 노골적인 혐오가 더해져 가시처럼 박혔다. 어느 날 건물 관리소로부터 개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개를 마주 보는 게 그냥 무섭다는 민원이 들어온 게 그 이유였다. 내가 사는 건물의 높이는 18층으로, 나는 당시 16층에 살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 나름의 애를 썼다. 사람들 왕래가 적은 시간을 골라 산책을 나갔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이가 있다면 가뿐하게 포기하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내 개를 믿지만 이 개 역시 짐승이기에 사람들이 두려워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려했다. 무턱대고 '우리개는 물지 않아요'를 외치는 편협한 견주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유 없는 분노와 원색적인 비난을 듣는 날이면 견디기가 버거웠다. 나는 점차 예민한 파-이터가 되어갔다. 남에게 해를 가하지 않은 내 개를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을 더는 참지 않았다. 어쩌면 이 과정 덕에(?) 함께 지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스스로 이 개의 [보호자]를 자청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한 직후, 남편은 잠시 볼 일을 보러 가고 나는 개 캔넬 옆에서 피로함과 안도감에 주저앉아 있었다.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 들 속 몇몇이 개를 발견하고 캔넬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그들을 경계했다. 하지만 캔넬까지 오기도 전에 사람들은 두 손을 뻗어 허공에서 개를 쓰다듬었다. 그들의 온화한 표정을 바라보며 이내 날카롭게 갈아둔 긴장감을 바닥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오랜 비행을 견디고 터키로 온 이 개를 온 마음을 다해 환영해주었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개에게 쏟아지는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이 개가 살아가기 훨씬 편한 곳이 되리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터키는 길 위, 상가, 지하철, 공원- 어디서든 개를 볼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개를 볼 수 있다. 그들도 그들 길을 갈 뿐인 그 풍경이 우리에겐 퍽 새롭다. 개들 대부분은 주인도 집도 없는 개들로, 정부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나름 평화롭게 살아간다.
이곳은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만 개를 미워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개를 키우는 사람을 향한 곡해된 시선도 아직까지는 겪어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작은 개, 큰 개를 따로따로 칭하지 않는다. 그냥 '개'라 부를 뿐이다. 우리개는 이곳에 와서야 자기 이름 앞에 붙었던 [큰]이라는 굴레를 멀리멀리 날려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