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좋아하는 사람에서 개를 '좀' 아는 사람으로
출처: 인스타툰 개큰개파이 시즌1, 33화 (2020년 7월 2일 업로드)
잘됐다. 너 개 좋아하잖아
내가 6살 개와 함께 살게 됐다 얘기하면 대부분 주위 반응은 비슷했다. 내가 개도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하니 사는데 크게 어렵지 않으리라 낙관적인 전망이었다. 맞다.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동물 관련 콘텐츠를 챙겨봤고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습관처럼 동물농장을 봤다. 사람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자아내며 동물농장의 90프로 지분을 자랑하는 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날이 동물의 복지와 안위가 사람들의 화두로 대두되면서 어느새 개는 '동물'의 대표주자가 되어 반드시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개와 함께 살게 된 후 아침에 눈을 뜨면 허우적거리며 개의 밥을 펐고, 낮밤 가리지 않고 산책을 나갔다. 여름엔 더울까 겨울엔 추울까 신경을 썼고, 맛있는 간식이 보이면 쉽게 지갑을 열었다. 함께 하는 시간과 조각조각 추억할만한 기억들이 쌓이자 자연스럽게 개에 대한 정이 쌓였다. 문뜩 가만히 있다가도 개가 보고 싶었고 얼마라도 멀리 떨어져야 하는 시간이 생기면 개의 안위를 걱정했다. 내가 정말 '견주'가 됐구나 홀로 뿌듯함에 몸서리친 순간들이 있었다. 이렇게 견주로서의 삶에 취해가고 있을 때 개는 오히려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으리라. 개는 내가 바랐던 만큼의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나와 만나기 이전, 이미 개와 내 남편 사이에는 영겁 같은 시간이 존재했다. 나는 그를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와 비등해질 수는 있으리라 여겼다.
나로부터 밥/ 놀이/ 산책이라는 중대한 욕구가 충족된 개는, 남은 마음의 여유도 남편 몫으로 돌려놨다. 내가 개로부터 받을 수 있는 관심은 개가 뭔가 필요로 할 때, 딱 그때뿐이었다. 점점 이 개는 내 개가 아닌 남의 개라는 걸 실감했고, 속된 말로 남의 자식을 기르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개에게 사랑을 쏟아도 돌아오는 게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때때로 인간으로서 개에게 차별받는다는 느낌까지 들 때는 개를 잠시 외면해야 할 만큼 개가 밉기도 했다. 이 개로부터 남편만큼의 애정을 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상처 받았다. 사람이 개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다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나는 개에게 어떠한 기대 없이 순수한 사랑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개에 향한 인식은 좋다/싫다의 극단적인 양면으로 나뉘지만,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게 개' 라 우길 수 있는 중립 지대는 없다. 그럴 때면 홀로 [개를 향한 중립지대]를 상상하곤 했다. 나는 대부분 '개가 좋다'쪽이 발을 걸치고 있을 테지만 종종 남몰래 다리를 건너 중립지대로 피신을 떠날 것이다. 그곳에서 실컷 '개가 갠데 대체 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를 목청껏 외치며 실컷 개를 욕 할 것이다. 실컷 외치다 분이 가라앉으면 다시 평화로운 '그래도 개는 좋아'구역으로 돌아가 원래대로 개의 똥오줌을 치우고 밥을 챙기는 본분에 만족하며 살아가리라.
개는 사람의 영혼이 마지막 종점까지 내몰렸을 때 마주할 수 있는 최후의 위안이다. 하지만 개는 깨끗하게 닦여 각 잡힌 모서리 위에 세워진 예쁜 동상이 아니다. 이 삭막하고 차가운 도시에서 인간과 살아가는 생명체로 나름의 사회성을 발달시켜 왔다. 그것이 꼭 모든 인간에게 이롭기만 한 방향으로 발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는 언제까지나 [천사]처럼 아름다운 행동만 행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 그런 식으로 개를 인식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가급적 개를 길러서는 안 된다 권하고 싶다. 개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실망하는 순간 역시 빨리 찾아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개와 살며 나는 되려 개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듣고 오래 생각한다. 정말 개를 좋아하나? 개의 포근하고 말랑한 털과 부드러운 살갗을 뒤로한 채, 한 지붕 아래에 누워 먹고 싸고 아픈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질문은 꼬리를 물고 나의 대답은 어느 순간 미로 속에 길을 잃는다. 결국 나는 개를 좋아하는가로 개와 함께 살 지 여부를 판단하는 건, 개를 [사랑]이라는 하나의 감정에만 뿌리를 두고 기르겠다는 말과 같은 말로 여겨진다. 개의 존재감은 생각보다 무겁고 사랑이라는 뿌리는 생각보다 자주 작은 바람에 휘청인다. 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짊어져야 할 [책임]그리고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 등- 개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더 튼튼하게 준비해야 마음가짐들이 너무 많다. 만약 이러한 준비가 없다면 나처럼 종종 중립지대로 마실 나가는 것 만으로 충분치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쉽게 개를 좋아한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개를 좀 안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의 똥오줌을 치우고 병원에서 아픈 개의 책임자로서 보호자 노릇을 하며, 24시간 빈자리를 걱정하는 나는 이제야 '개'를 좀 안다. 개의 나이 이제 8살. 조금씩 늙음을 향해 걸어가는 이 개를 위해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은 마음의 구역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