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함께 걷는 즐거움

프로 산책인이 되는 멀고 험한 길

by BAEK Mi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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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스타툰 개큰개파이 시즌1, 7화 (2020년 4월 10일 업로드)



처음 개와 단 둘이서 산책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은 개와 처음으로 단 둘이 보낸 며칠간의 기억과 함께한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해외로 세미나를 떠나는 기간인 약 열흘간, 내게 자신의 개와 함께 지내볼 것을 권했다. 한번 찐하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말에 홀랑 넘어갔던 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오랜 기간 개를 맡길 곳이 없어 내게 부탁하기 위한 사탕발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당시 이미 개와는 남편의 집을 왕래하며 친해지기도 했고, 함께 자주 시간을 보냈던 터라 며칠 돌보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몇 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면, 바로 단 둘이서 나가는 산책길. 여태 했던 산책 대부분은 남편과 동행하는 산책이었기에 개 목줄의 책임이 나에게 넘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내가 목줄을 리드할 때면, 남편이 뒤에서 살펴봐주었던 터. 개와 단 둘이 해야 할 매일의 산책은 이번 동거 일정 중 가장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개를 돌보기로 한 이상 다음으로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개와 단 둘이 남겨진 대망의 첫날.

남편이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셋이서 함께 산책을 하고, 남편은 훌훌 공항으로 떠났다. 개는 갑작스러운 남편과의 이별에 어리둥절하는 듯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하게 낯선 공간에 녹아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개 역시 낯을 가렸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개는 자기의 불편함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에 인색했고, 이후로 한참이 지나서야 자기 마음을 끄집어 내 보일 수 있게 됐다. 그만큼 그때의 개는 자기를 표현할 줄 몰랐다.

시간이 흘러 단 둘이서 산책을 가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가야만 한다'를 속으로 외치며 배변봉투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목줄을 손에 감아 짧게 잡아 쥐었다.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한 뒤, 문을 열고 밖을 나선다.

나는 그때 정말 두려웠다.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이 개를 잘 다루지 못해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서였다. 개가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건, 사람과 개 모두를 다치게 하는 일이다. 그 잘못은 당연히 견주에게 있다. 예전에 개 목줄을 쥐고 있다가 크게 넘어진 적이 한번 있었다. 남편과 함께 했던 산책길로, 잠시 목줄을 내가 쥐고 있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잠시 다른 곳에 신경이 팔린 틈에 우리 일행 앞으로 다른 개가 다가왔고, 개는 순간적으로 그 개를 향해 튀어나갔다. 나는 그대로 고꾸라졌고 목줄은 손에서 빠져나갔다. 곧바로 남편이 개를 통제해 별 탈은 없었지만 나는 넘어진 탓에 다리를 다쳤다. 개의 힘이 이렇게 세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무서웠다. 개의 목줄을 쥔다는 건 그 힘을 통제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그렇지 못할 경우 나도 남도 다치게 할 수 있음을 통감했다. 그때 일 이후로 산책 시 목줄을 쥐고 있을 때 시선을 다른 곳에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내 주변을 살피는 동시에 개의 눈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주시했다. 개 주변으로 다가오는 사람, 다른 개, 고양이, 자동차 등-예리한 레이더망을 펼쳐놓고 살폈다. 자칫 내 부주의로 내 개가 다른 이에게 불편함을 끼치고 그로 인해 이 개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진 않을까 좌불안석하며 산책을 이어나갔던 나날. 그렇게 볼 일만 마치면 후다닥 집으로 돌아오는 몇 번의 산책이 있었다.

다행히 개는 어설픈 사람의 손길에도 순순히 자신의 몸을 의탁해주었다. 둘이 산책하는 내내 생각보다 까탈스럽게 굴지도, 함부로 어딘가를 향해 다가가지도 않았다. 내가 당기는 손길에 순순히 응했고, 때때로 자신의 고집도 꺾을 줄 알았다. 간혹 등장하는 낯선 개와 고양이 때문에 긴장하기도 했지만, 생각만큼 난감한 상황을 벌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촉박하게 내딛던 산책길이 조금씩 제 속도를 찾아갔다. 개의 뒤꽁무니만 쫓던 내 눈도 어느새 개 주변의 풍경을 담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분이 생겨났다. 개가 걷는 걸음을 따라 흙냄새 풀냄새 낙엽 냄새를 맡았고, 나 홀로 걸을 때보다 더 많은 풍경을 개와 함께 공유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이 개를 산책시키는 게 아닌, 이 개가 나에게 자신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느꼈던 것 같다. 점차 산책 가는 길은 집으로부터 훨씬 더 멀어졌고, 더 이상 함께 걷는 길이 두렵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려 목줄을 들면 개가 웃는 표정을 짓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결혼 후 이제 개를 주도적으로 데리고 다녀야 하는 의무가 자동으로 생겨났고 점차 낮 산책보다 밤 산책을 선호하는 프로 산책인이 되었다. 밤은 낮보다 고요하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적어 주의해야 할 부분들도 적어진다. 덕분에 내 시야는 한층 여유로워지고 개는 무거운 밤공기 아래로 여기저기 사뿐히 내려앉은 냄새들을 마음껏 휘젓고 다닐 수 있다. 개는 산책을 하다 기분이 좋으면 코로 내 손을 콕콕 눌러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곤 하는데, 그 촉촉한 촉감이 때로는 고맙다는 인사말처럼 느껴지곤 한다. 크고 힘이 센 개. 하지만 내 힘없는 손에도 곧장 자신의 몸을 끌어와주는 개. 나는 이 개와 오래도록 함께 걸을 수 있길, 같은 풍경을 볼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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