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문을 열고 얼굴을 내밀면 코끝으로 가을이 지나간다. 8월 말. 공기에 가득 머금은 계절 냄새로 지난한 여름이 다시 먼 곳으로 여행 갔음을 알 수 있다. 냄새란 참 얄궂게도 어딘지도 모를 어딘가로 나를 되돌려 놓는다.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가 머물렀던 어느 공간 어느 시간 속에 불쑥 도착해있다. 터키의 가을은 예전 유학했던 기억을 불 지피기에 안성맞춤이다. 내가 유학했던 곳은 프랑스 앙굴렘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나는 그곳의 타는 듯한 풀냄새를 좋아했다.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에서 느껴지던 비릿한 강 냄새도. 여기저기 흩어진 커피와 종이 냄새. 지난밤의 흔적이 채 지워지지 않은 알코올 냄새... 이스탄불이 유럽 대륙을 걸치고 있어 그런지 매 계절마다 풍겨오는 공기의 질감이 그때의 감각과 매우 비슷하다. 이렇게 예전 기억 속을 떠다니다 보면 어느새 발끝이 땅에서 3센티쯤 붕 떠 있곤 한다.
캐릭터가 뛰어놀 공간을 꾸려야 할 차례다.
본격적인 무대 위 세트가 정해지는 만큼, 영상 전체 색감과 빛, 질감도 함께 정해진다. 애초 단순한 흑백의 화면으로 화면으로 공간을 채울 예정이었지만, 예전 <고래> 작업을 했을 당시 흑백의 화면이 차갑고 무겁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았던 터. 밤을 비추는 따뜻한 백열등 조명처럼, 어둠 속 따스함이 표현되길 바랐다. 그를 위해 다양한 톤 작업을 시도해보면서 최종적으로 짙은 갈색/아이보리 색을 주요 컬러로 하는 화면을 구성하기로 한다.
애니메이션을 기획할 때면 '왜 이걸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건 외부에서 듣는 질문인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보통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하면 1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 '왜'에 대한 분명한 확신 없이 일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요즘 시대에 손그림으로 오랜 시간 노동을 해야만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일인가. 그렇기에 이것을 그저 그림을 그리는 '기술'로써만 그 가치와 이유를 증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오랜 기간 고심하며 내린 결론은, 결국 애니메이션은 관객들로 하여금 현실에 없는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기술이 무엇이든, 그것이 새로운 공간과 이야기를 체험하는 장이 된다면, 크든 작든 그만의 가치를 가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애니메이션에서 관객들이 가장 먼저 새로운 '체험'을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무대 배경일 것이다. 극 초반, 캐릭터에 이끌려 영상 속으로 초대된 관객의 눈앞에 다채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이 공간을 제대로 설계하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관객들은 이야기 속 세계에 몰입할 수 없고 더 이상의 이야기를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공간을 그려내는 일은 애니메이션 기획 단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애니메이션 속 공간은 일상적인 3차원의 공간을 투영할 수도, 또는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을 무대로 삼을 수도 있다. 나는 후자의 경우를 선호한다. 시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가 훨씬 넓어지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투시점에 얽매여있지 않고 무엇보다 움직임만으로 새로운 공간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애니메이팅 과정을 좋아하는 작가에겐 더 많은 즐거움을 추구할 여지를 준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대부분의 공간을 만들었다.
자, 이제 아이는 물고기와 함께 [둥근달]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 ‘달’을 연상할 수 있는 것, ‘잠’을 연상할 수 있는 것,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질 수 있는 것을 염두에 두고 상상의 무대를 펼쳐본다.
수면 관련한 리서치를 하면서, 해수면 아래에서 잠을 자는 고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세로로 몸을 고정한 채 일렬로 잠을 자는 고래의 모습에서 흡사 거대 원시 돌기둥에서 뿜어지는 웅장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고래가 잠을 자는 수면 아래의 공간을 하나의 배경으로 만들었다. 이야기에 처음 등장하는 파트로, 아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 상상 속 먼바다를 묘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처음 구상했던 아트워크에는 고래와 물고기의 비율차가 크지 않게 그려졌지만, 후에 작업된 애니메이션에서는 극단적인 크기 차를 두어 넓고 깊은 공간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세로로 서 있는 데다 눈까지 감고 있는 고래의 모습 때문에, 죽은 고래의 무덤처럼 느껴진다는 의견을 듣기도 했던 장면이다.
고래 이후 만나는 풍경으로, 바닷속에서 바다 위로 공간이 이동한다. 아이와 물고기는 해파리의 둥근 머리를 '달'로 착각하고 그리로 다가간다. 검은 바다에서 점점이 해파리의 둥근 머리들이 떠오르는 장면을 상상하며 배경 아트워크를 그렸다. '해파리'는 특유의 우아하고 아름다움 움직임과 외형 때문에 창작자들에겐 사랑받는 소재 중 하나다. 아트워크 작업에서는 촉수를 가느다란 머리카락처럼 표현했는데, 이것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내느라 꽤나 고생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해파리의 공간을 지나면 아이와 물고기는 어떤 '숲'에 다다르게 된다.
예전에 '낮에 보이던 그림자들은 밤이 되면 모두 어디로 가는가?'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구상했던 적이 있다. 해당 아이디어를 하나의 온전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는 못 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이 아이디어를 배경의 무대로 빌려와, 밤이 되면 그림자들이 보여 자는 숲이 있다는 설정으로 공간을 구상했다. 나무와 숲의 외형이 아트워크에 강하게 드러나다 보니, 이런 '그림자가 쉬는 숲'이라는 콘셉트가 시각적으로 잘 녹아들지는 못 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던 배경 중 하나이다.
아이는 점점 상상 속 공간에서 현실적인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즐거운 추억이 있는 장소이자, '달'을 묘사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들이 뒤섞여있는 공간, 놀이공원으로 무대가 변화한다.
이 공간은 회전목마가 주요 소재이다. 아이는 회전목마 기구의 끝에 매달린 조형물을 '달'로 착각하여 다가가지만, 그 역시 자신이 찾던 '달' 이 아님을 알고 실망한다.
놀이공원을 지나 어느덧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 들어선다. 골목엔 뒤집어진 가로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가로등에는 둥근 전구들이 하나씩 놓여있는데, 아이는 반짝 빛이 들어오는 전구를 보며 자신이 찾던 '달'이 아닐까 이리저리 살펴본다.
전등이라는 소재는 내가 살던 집 근처 가로등에서 착안한 소재로, 그 가로등은 다른 가로등에 비해 유독 달처럼 둥글고 환한 전구가 끼워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직접 보고 겪은 기억과 체험은 소소하게 애니메이션 속 소재로 담긴다.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여행하는 사이, 아이의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진다. 여러 풍경이 담긴 창문들을 지나면 아이는 어느새 방으로, 자신의 침대로 돌아와 있다. 물고기는 다음을 기약하고 잠을 자는 아이 곁을 떠난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렇게 주요 무대가 정해졌다. 이제 이야기, 캐릭터,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화면 속에 연출될지 장면 장면을 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