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의 '육아' 이야기는 재미있지 않아요,

라는 누군가의 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다.

by BAEK Miyoung

희뿌연 불빛을 내뿜는 노트북 앞에 앉아 심드렁하게 커뮤니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일이 요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한창 오고 가는 이슈들은 뭐가 있나, 재미있는 짤은 뭐가 있나- 그렇게 허투루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때우는 일이 잦아졌다. 좀 문제가 되지 않나 싶지만 쉽게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오늘도 이곳저곳 마우스를 옮기다, 막 이야기가 오가는 이슈 하나를 보게 됐다. 꽤나 소소하고 따뜻한 이슈로, 유명 웹툰 작가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작가는 오랜 기간 자신의 삶에 대해 특유의 발랄한 유머를 담아 일상 웹툰을 그려왔다. 나 역시 해당 작가의 웹툰을 오랫동안 재미있게 보아왔던 터라 그 소식을 보자마자 마음 한구석에서 '오!'라는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커뮤니티 속 사람들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학생-사회인-결혼이라는 인생의 곡선을 따라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걸어온 작가의 삶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앞으로의 삶을 또 어떤 작가만의 방식으로 콘텐츠에 녹여낼지에 대한 기대감을 표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잠시 시선을 멈추게 하는 댓글이 발견했다. 나는 잠깐 놀랐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댓글의 내용이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약간은 시무룩한 뉘앙스가 담긴 내용으로,

곧 이 작가도 육아, 출산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은데, 그 반짝이고 재기 넘치던 여성 작가들이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이 육아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이 안타깝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화면에 고정해둔 시선을 애써 돌려 스크롤을 내렸다가도, 이내 다시 올려 댓글을 곱씹었다. 그리고 이후 노트북 앞을 떠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생각했다.

실로 그러한가? 여성 작가가 육아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리 실망스러운 일인가?

얼마 전 임신과 출산을 겪은 이후 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생각으로 뇌가 꽉 차있는 사람으로서, 어쩐지 발끈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삶 곳곳에 놓여있는 행간의 뉘앙스에 세심하게 반응하고 민감하게 그려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지나가다 발에 차이는 돌멩이를 보고 깊게 사유하기도 하고, 말 못 하는 식물을 키우면서도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친구, 연인, 가족과 같은 관계에서 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혹은 여행과 같은 일상을 떠난 특별한 경험은 말할 것도 없다. 때로는 자신이 키우는 반려견과의 추억과 헤어짐을 오랜 기간 이야기하는 작가도 있다.(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키우게 된 반려견 이야기를 오랫동안 인스타툰으로 그려왔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 보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속한 시간대에서 겪는 가장 임팩트가 큰 사건, 또는 가장 큰 영감을 받는 일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다. 나름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육아' 혹은 '출산'이라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오면서 겪었던 그 어떤 일들보다 강렬한 임팩트를 가진 일이었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듣고 배운 삶에 대한 자세라던가 일반적인 지식 또는 상식과는 결이 많이 다른 원초적인 경험으로, 매 과정 속에서 느껴져 오는 모든 감각이 단순히 신선하고 경쾌한 감각으로 느껴지기보다 한순간 나체로 풀숲에 내동댕이 쳐진 것처럼 당혹스러운 감각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다른 인격을 가진 인간을 나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두려워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과정은 착실한 연습 혹은 과정을 통해 배우거나 성찰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닥쳐오기 때문에 그것이 달든 쓰든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부딪혀 받아내고 나름의 방식대로 소화해내야만 한다. 그렇게 다이내믹한 과정만으로도 가슴 벅차기 그지없는데, 그 과정을 통해 낳는 결과가 단순한 돌이나 식물, 강아지가 아닌 하나의 온전한 인간- 나의 못난 구석과 내 사랑하는 사람을 닮고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작가라면 이를 어떻게 말하지 않고 견딜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어째서 이런 육아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더 이상 재기 발랄하거나 반짝이던 예전의 작가로 보이지 않을까 염려하는 걸까?

우선은 임신과 출산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보편적인, 다른 말로 '식상한 일'로 인식되고 있는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회 구성원 각각의 개성과 삶의 형태가 어느 때보다 존중받는 요즘 시대에서 누군가 돌을 반려돌로 키우고, 레고를 모으고, SF영화를 보는 것조차 하나의 개성 있고 특색 있는 '개인의 경험'으로 인정된다. 반면, #임신 #출산 #육아라는 키워드는 그저 사회 보편적인 '공통의 경험'으로 퉁쳐버리는 경향이 적지 않다. 이것은 '엄마'가 되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억울한 일이다. 각자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각기 다른 모습과 가치로 인정받는 것처럼, 각각의 육아 역시 디양한 모습으로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오랜 기간 보편적으로 경험해 왔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육아]라는 개개인의 경험을 [공통의 경험]으로 묶어버릴 수는 없다. 임신을 하고 보니 매체에서 그려지는 그 [임신]이 얼마나 천편일률적으로 묘사되는지 적지 않게 놀란 적이 있다. 1년도 채 안 되는 임신 기간을 하나의 증상, 하나의 단어, 하나의 체험으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임신을 겪는 모두가 제각기 다른 체험을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출산을 한다. 임신만 해도 이러한데, 육아는 오죽할까. 가치관, 아이의 개성, 나의 개성, 남편 혹은 파트너의 개성과 상호 작용, 나를 둘러싼 환경 등등 변화무쌍한 변수들 속에서 레벨 0의 캐릭터를 실시간으로 키워내는 육아는, 모두 개성 있는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이야기들이다. 매 끼니 거대한 양의 식사를 하는 것도, 같은 게임을 여러 방식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그들의 개성으로 알아주는 요즘 세상에서, 어째서 아이의 육아 이야기는 그저 똑같은 말의 연장선일 뿐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세계 일주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별한 날 특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리지 않는다고 해서, 연인과 엄청난 연애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동안 밖이 아닌 집에서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일상을 살아가게 된다고 해서 더 이상 그 작가를 재기 발랄하고 반짝이지 않을 거라 말하는 것은, 조금은 무례하고 조금은 섭섭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특별히 이 댓글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육아를 통해 여성 개인의 정체성이 옅어지고 [엄마]라는 공통의 카테고리로 묶이는 것을 시답잖은 일로 치부하는 이들이 비단 같은 성별인 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육아나 출산, 자녀 양육에 대해 누구보다 두려워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나'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나 역시 오랜 기간 결혼과 육아를 거치면서 사회에서 투명해질 '나'에 대해, 다른 이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버릴 '시시해진 나'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었다. 이것을 단순히 그저 젊은 여성들의 생각이 짧다거나, 경험 부족에서 나오는 말이라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기에는 꽤나 찜찜한 구석이 있다. 이것은 결혼과 육아를 거쳐 사회 안에서 '엄마' 혹은 '아줌마'로 불리는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를 직접 지켜봐 온 우리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엄마가 된 여성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중받는 것과 더불어 그들이 육아를 통해 놀랍도록 신선한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서사를 이야기해 왔더라면, '여성 작가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육아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저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의 반복일 거라 단정하는 이는 없지 않았을까?

시대가 변했다고들 한다. 굴지의 기업을 운영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소위 말하는 위대한 여성들도 쉽게 만나볼 수 있을뿐더러 그들에 대한 평가와 사회적 기대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드높아졌다. 그 와중에도 한 생명을 사회 구성원으로 길러내는 '엄마' 역할에 대한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임신' 혹은 '육아'가 한 인간의 삶을 갈아내서 해내야 하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적잖이 동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평가를 쳐주지는 않는다. 어차피 대대손손 시대와 공간을 막론한 모든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해온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금의 여성들이 자라면서 배우고 기대하는 이상적인 여성상과 여성이 실제로 겪는 현실의 낙차는 아직까지 크다. 사회에서 내세우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저 멀리 내달려 가는데 비해, 육아나 결혼과 같은 전통적으로 기대되는 여성의 역할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둘 사이 적당한 합의점을 우리 사회는 찾지 못했다. 언제나 멀리서 반짝이는 이상향을 제시할 것만 같던 누군가가 사회적 아우라를 쫓는 대신 '육아'라는 현실을 쫓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자신이 동경하는 집단에서 끌어당겨 시시한 집단으로 강등시키는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슬프다. 언제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 문제들의 당사자들끼리 서로 고민하고 상처받으며 상처의 골을 더 깊게 만들어야 할까.


예전에 '그 똑똑했던 여고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와 같은 어조로 시작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20대 때만 하더라도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하던 똑똑하기 그지없던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하나 둘 사회에서 자취를 감추고 집안의 울타리 안에서 가족의 그림자처럼 살아가는 것에 대해 탄식하는 글이었다.

처음 이 글을 접했던 예전의 나 역시 어째서 실력 있는 여성들이 결혼과 육아로 사회에서 사라져야만 하는가 적잖이 분개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글의 이면에는 남성 중심의 조직망에 떠밀린 여성들이 자의로 혹은 타의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떠난 것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토로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똑똑한 여성"들이 타인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일"로써 명예를 얻지 못한 채 가정에서 다른 구성원들의 그림자처럼 지내는 것에 대한 불만과 애수가 글 전면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어렵잖게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예전에 느꼈던 나의 분개가, 글에서 잔잔하게 느껴지는 애수가 조금 이상하게, 시간을 더 들여 생각하면 불편하게까지 느껴진다.

셀 수도 없는 오랜 기간 동안 기꺼이 거름으로서 존재하기를 자처했던 엄마들의 역사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의 이름이 사회 중앙에 자리한 드높은 탑에 깊게 새겨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 새겨진 인물들을 키웠고 그러한 인물들을 만드는 조력자들을 키웠고 그러한 조력자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구성원을 키워냈다. 그렇게 긴 역사를 이어왔다. 단지 두드러지는 '사회적 영향력'이 없다는 이유로 육아라는 삶을 택한 이들을 초라하고 재미없는 삶을 산 아무개 정도로 낙오시켜 버리는 것은 역사를 지탱해 온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던 작가가 더 이상 작가의 빛나는 이름으로만 불리지 않고 누구누구의 엄마, 누구누구의 아내로서 각인되는 것이 팬의 입장에서 씁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출산과 육아를 겪어낸 작가는 성숙한 인간으로 익어간다. 개인이 겪는 사유의 깊이는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진다. 당신의 작가가 당장은 육아로 인해 잠시 이야기하기를 멈출 수도, 혹은 엇비슷해 보이는 육아 이야기를 펼쳐내어 당신을 심드렁하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특별한 한 아이는 자라나고 작가는 더 깊은 이야기를 당신에게 들려줄 준비를 한다. 그 작가의 반짝임과 재기 발랄함은 어디까지나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올해 고단한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었다. 참담하게도 지금 내 곁에 있어야 할 나의 아기는 너무 일찍 먼 곳으로 떠난 지금, 내 속에는 들끓는 슬픔과 분노, 끝을 알 수 없는 그리움만이 두꺼운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심심찮게 들려오는 다른 이들의 임신과 육아 소식을 들을 때면 적지 않게 마음이 아려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만약 누군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아 즐겁게 육아 일기를 써 내려간다면, 나는 그것을 씩씩하게 겪어내는 작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켜볼 거다. 갓 태어난 새싹 같은 아기가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 어떤 열매를 맺는지, 작가가 아이를 통해 어떤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는지 나는 늘 궁금해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 특별하고 재미있을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에 대해 대단한 박수를 보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냉소는 보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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