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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Dec 31. 2023

지난여름, 산에게

위기를 알리는 신호음

 튀르키예로 오기 전, 나는 5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내 애니메이션 지식의 초석을 다져준 대학의 학과에서 강의 제안을 받은 것은 막 서른을 넘길 무렵,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온 지 1년쯤 지난 때였다. 수업은 차기 애니메이션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이자 내 후배들)에게 내 작품 제작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작품 제작에 조언을 더하는 내용으로 꾸려나갔다. 낯을 가리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하지 않던 나에게 있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러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강의라는 나름의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여실히 통감하고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수학했던 것도, 강의를 맡지 않았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도전이었다. 튀르키예로 터를 옮기면서 이 일도 자연스레 정리했다. 학교를 통해 맺어온 인연과 공란 없이 이어 온 경력이 아깝기도 했다. 하지만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수업을 이어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2022년 가을, 학교로부터 다시 강의를 할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Zoom을 통한 온라인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유산 이후, 다른 방면으로 관심을 둘 일이 절실히 필요했던 때였다. 따라서 제안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랜만에 수업과 관련된 자료들을 준비하며, 그간 강의를 놓은 뒤 보냈던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포트폴리오도 차곡차곡 늘어나 있었고, 내 경험을 보다 정제된 언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 역시 예전보다 내 수업을 만족스럽게 듣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2022년 2학기 수업을 마무리한 직후, 나는 다시 임신이 되었다. 3월이 되면 나는 다시 2023년 1학기 수업을 준비해야만 했다. 내 컨디션을 완전히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6시간(3시간+3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게 체력적으로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개강이 시작될 무렵 몸 상태도 2월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3월 첫째 주, 새 학기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 무렵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와 남편은 어디 풍경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갈까, 가서 뭘 먹어볼까 사사롭고 평화로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12주의 매직은 없었지만 정말, 레알, 안정기라 부르는 16주의 매직은 있을 모양이라며 평화롭게 웃었다. 당장 멀리 가지는 못하더라도 남편과 가까운 카페를 가 차를 마시거나, 두 손 가득 장을 보거나(물론 짐을 드는 건 남편의 몫이다.), 강아지와 동네 산책을 가는 그런 소소한 일상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소중히 그러모아 우리 곁으로 다시 가져다 두기 위해 애썼다. 

 강의 시작과 함께 요 몇 달간 누워있느라 할 수 없었던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를 위해서는 책상 앞 모니터를 마주하는 시간을 다시 조금씩 늘려야 했다.(나는 태블릿과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 2022년 12월에 한 출판사와 내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동화책을 출간하기로 계약한 후, 12월 한 달 동안 전체 페이지의 절반 정도의 분량을 그려뒀다. 그러나 출혈로 누워 지내야만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척 없이 몇 달을 방치해 둔 터였다. 나는 컨디션이 나아지는 대로 이 동화책 작업부터 마무리하기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다. 푸른 풀숲 안에서 비를 맞으며 신나게 춤을 추는 토끼들의 모습이 담겨있어 여름 빗물향이 가득한 책이 될 터였다. 따라서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꼭 출간해, 앞으로 태어날 너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싶었다. 나는 매일 한 페이지씩 완성하는 속도로 그림을 그려나갔다. 되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루 몇 시간씩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다가도 몸에 조금이라도 부담이 간다 싶으면 펜을 놓고 침대로 들어가 쉬었다. 3월 말이 되었을 때 책 표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페이지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강의도 한 달가량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이제 조금씩 컨디션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듯했다. 원래 체력의 60% 정도는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17주차에 들어서 맞이한 첫 일요일이었다. 나는 이 날 이 순간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한다. 저녁 식사를 뭘로 할지 고민하는 평범하고도 별일 없는 평화로운 주말 저녁이었다. 카레를 좋아하는 남편은 카레를 하겠다며 주방으로 앞장섰고 나는 밥솥에 밥을 안치기 위해 남편을 따라나섰다.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무언가 왈칵 흘러내렸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이 아래 속옷을 적셨다. 임신 중기에 흔히 분비물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것이 몸 밖으로 나오는 거라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순간적으로 쏟아 내린 양이 너무 많았다. 당황한 나는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짧은 몇 초 사이에 차라리 다시 피가 나는 것이길, 제발 내가 우려하는 상황이 아니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화장실에 들어가 허겁지겁 바지와 속옷을 내려 확인해 보니 이미 속옷은 다 젖은 상태였고 그때까지도 계속해서 몸 밖으로 무언가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건 피가 아니었다. 느긋한 주말 저녁은 그 순간 끝이 났다. 우리는 하려던 모든 것을 중지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양수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증상이 처음으로 나타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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