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EK Miyoung Jan 03. 2024

지난여름, 산에게

입원하다.

 매일 지나쳐야 하는 집이 하나 있다. 누군가 그 집에 대해 묻는다면 ‘알고 있다’ 정도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오가면서 살짝 눈으로 흘겨본 집 안의 풍경도 대충 파악하고 있노라 몰래 마음속으로만 대답하려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가구와 인테리어로 살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냐는 질문에 답하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스쳐 지나가는 여러 집들 중 유독 한 집에 대해 잘 알 이유는 없다. 물론 통상적으로 집 안에 침대라던가 식탁이나 책상, TV 따위가 있지 않겠냐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그 모양이나 위치, 혹은 연식과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내 관심사로 두는 것도 이상한 따름이라 여길 것이다. 그런데 당장, 이 순간부터 그 집 안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집에 사는 사람은 물론 가구, 집기, 온도, 습도 그 모든 생소한 정보들을 단시간에 파악해야만 한다. 심지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자야 하는 상황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면?! 

 나에게 임신은 그런 일이었다. 대강은 알고 있다 생각했던 일을 갑작스럽게 통달해야 하는 일. 생각할 여유도 시간도 없이 무조건 적응해야만 하는 그런 일 말이다. 

 이전의 나는 이 세계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임신과 육아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표현은 낯설기만 했고 때로는 매끄럽지 않은 무언가를 삼키는 것처럼 껄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언젠가 알아야 할 일이지만 당장은 아니라는 생각에 임신과 관련된 화두가 눈앞에 펼쳐질 요량이면 재빨리 자리를 옮겨 짐짓 모른 척했던 적도 여러 번이다. 뻔뻔하게도 임신 후 내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마치 임신과 관련된 모든 것에 알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가슴이 불어나고 허리와 엉덩이 둘레로 두툼한 살이 찌고 평소 잘 먹던 음식이 역하게 느껴지는 변화들이 기습방문한 손님처럼 예고도 없이 불쑥 내 몸을 점령했다. 게다가 원인불명의 출혈까지 더해졌다. 임신 초기, 한참 [출혈]과 관련된 임산부들의 경험담과 전문가들이 올려둔 정보들을 탐닉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임신 중기(임신 4개월~7개월)와 관련된 정보들로 눈길을 옮겼다. 그러다 임신 중기에 비슷한 이유들로 어려움을 겪은 산모들의 경험담을 접하게 됐다. 대부분이 ‘양수’로 인한 이슈들로, 양수가 너무 많거나 혹은 적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양수가 갑자기 모두 배출되어 임신 유지가 매우 어려워지는 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이 문제를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일종의 ‘공포’였다. 출혈과 마찬가지로 양수로 발생되는 문제들 역시 나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증상이었다. 또한 이 역시도 출혈과 마찬가지로 특정한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불길한 예감이 일었다. 하지만 일정 시기 이후로는 이와 관련된 글이나 영상들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출혈 증상으로 고생하다 이제 좀 안정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설마 저런 문제까지 나에게 찾아올 리는 없다 애써 믿고 싶었다. 


 3월 26일 일요일 밤, 구불구불한 이스탄불 시내를 달려 병원으로 향했다. 

 내 몸 밖으로 나온 것이 양수인지 아닌지 당장 확신할 수 없었다. 주말 저녁 병원은 오가는 이 없이 한산했고 당장 산부인과에 상주하는 의사가 없어 따로 호출을 부탁했다. 나와 남편은 빈 병동에 덩그러니 앉아 의사를 기다렸다. 깜깜하게 메마른 우주에 우리 둘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속이 바싹 타들어간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생각해 보면 임신 중 참 많았다. 리트머스지 검사상 나에게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 했다. 양수가 새는지 제일 간단하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리트머스 테스트지를 활용한 방법으로, 정상적인 분비물은 중성이거나 약산성인데 반해 양수는 약알칼리성을 띄므로 리트머스지의 색 변화로 양수 여부를 금방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꽤나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정밀 검사가 있지만(그런 검사가 있다는 것은 추후에 알았다.) 이스탄불 병원에서 그 검사를 받아본 적은 없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흐르던 분비물도 멈춰 있었다. 추가로 혹시 모를 균 정밀 검사를 진행했고, 의사의 권유로 응급실로 가 한 시간가량 수액을 맞았다. 다행히도, 역시나 아이는 무사했다. 

 수액을 맞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내가 보기에 확실한 건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내 몸 안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내 몸을 열어 헤집어 보고 싶은 마음마저 간절했다. 떨쳐낼 수 없는 불안 속에 당장 괜찮다는 의사의 말을 되뇌며 불안의 불씨들을 꺼뜨리려 애썼다. 우리는 약간의 불안과 약간의 안심이 뒤섞인 채로 밤길을 달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정말 거짓말처럼 다시 새빨간 피가 흘러내렸다.

 

이대로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은 것 외에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병원으로 향하기엔 늦은 시간. 무엇보다 너무 지쳤다. 우리는 대충 배를 채우고 서둘러 잠을 청했다. 그리고 하루 더 아무 조치 없이 보냈다. 그 사이 붉고 선명했던 피는 묽은 핑크색의, ‘피’보다는 ‘물’에 가까운 질감으로 변했다. 결국 다음날 우리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요 근래 자주 병원을 찾는 것이 어쩐지 민망했던 남편은 의사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다급하게 내 증상을 브리핑했다. 이미 병원 내에서 최근 자주 병원을 오가는 우리 둘을, 다들 ‘아는 환자’라 칭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그 병원을 오가는 유일한 한국인 부부였다.) 의사는 긴 말없이 초음파 기기를 세팅하고 나를 진료대에 눕혔다. 역시나, 다행히도 아이도 자궁 내 양수량 수치도 괜찮았다. 양수량은 아주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정상 범주 안에 들어온다 했다. 이상하게 그것으로 충분히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내 얼굴의 초조함을 읽은 탓인지 의사는 임신 중 어느 때 건 ‘출혈’이 보이는 건 생각보다 흔한 증상이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도 더했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멋쩍게 인사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남편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득한 내 걱정을 비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 계속해서 둥, 둥 둔탁한 북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쉽사리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날 밤, 너의 첫 태동을 느꼈다. 

 그날 병원에서 측정된 너의 신체 발달 그래프를 보던 중이었다. 그곳에는 머리 둘레, 몸통 둘레, 다리 길이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대부분 주수에 맞게 골고루 발달하고 있었는데, 누가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평균보다 머리 둘레가 월등히 컸더랬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뿌듯한 미소를 띤 채 마구 웃었다. 그러던 중 배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왼손을 툭 하고 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아직은 가냘픈 노크 같은 너의 태동. 처음 내 손으로 만져진 너의 존재가 너무나 기특해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치 ‘나는 괜찮아요!’라고, 걱정 어린 나를 향해 네가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은, 그런 넉넉하게 따뜻했던 밤이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도 내 증상은 여전했다. 아니 더 심각해졌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핑크빛 액체는 이제 일정 시간을 간격으로 울컥울컥 생리 패드를 흠뻑 적셔대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보통의 상황으로 넘길 수 없었다. 괜한 걱정이라는 남편을 설득해 꾸역꾸역 다시 병원을 찾았다. 2023년 3월 29일 수요일이었다. 그 주에만 벌써 세 번째로 찾은 병원에서 나는 바로 입원 통보를 받았다.



이전 08화 지난여름, 산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