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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EK Miyoung Jan 04. 2024

지난여름, 산에게

이스탄불 병원 라이프-1

 휠체어에 앉은 채 위층 병실로 옮겨졌다. 

 20분 전 병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병실로 들어서자 간호사들은 분주하게 내 옷을 환자복으로 갈아입혔다. 왼팔에는 수액과 항생제가 들어갈 정맥 혈관 라인을 잡았다. 나는 순식간에 환자의 모습이 되었다. 입원 중 침상 위 절대안정을 의사로부터 [명령] 받았으므로, 나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조차 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상체를 똑바로 세울 수 없었다. 이제 새하얀 침대 위에서 먹고 씻고 싸고 자는, 나의 모든 일상을 소화해야만 한다. 

 정신없는 순간이 지나가고 간호사들이 병실 밖으로 우르르 빠져나갔다. 나와 남편만이 남은 병실에는 잠시 정적이 돌았다. 그제야 내 상황이, 우리가 마주한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과 미안함, 자책감 가득한 얼굴로 남편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어제 분명 의사가 괜찮다 말하지 않았던가. 하루 사이에 양수량이 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했다. 이 속도대로라면 양수가 사라지고 아이 역시 견딜 수 없어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만 했을까. 조심할 수 있을 만큼 조심했고 거의 매일 병원을 찾아 나와 아이의 상태를 살폈다. 17주차를 막 지나 아이는 고작 200g의 무게를 가진, 첫 태동으로 이제야 자신의 존재를 세상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한 작고 여린, 하지만 분명한 존재였다. 아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해야 했을까.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도, 이렇다 할 최선의 선택지도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가로막힌 곳에 서서 온몸을 죄여오는 무력감만 절실하게 느낄 뿐이었다. 


 별도로 요구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배정받은 병실은 1인실로 매우 넓었다. 벽면 한쪽은 큰 유리창으로 창을 넘어 쏟아지는 햇볕과 풍경 덕분인지 심지어 집보다 쾌적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보아하니 이 병원 산부인과 병동에는 다인실 자체가 아예 없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시설은 나와 같은 입원 환자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분만을 위해 병원을 방문한 산모들로, 출산 후 하루 이틀 입원 과정을 거쳐 퇴원하는 듯했다. 병실이 그렇게 넓은 것도(보호자 침대가 있음에도 공간이 남아돌았고 큰 옷장, 샤워 시설까지 잘 설비된 화장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그곳이 분만을 한 부부뿐 아니라 아기를 보러 온 일가친척들이 모여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병동에는 하루에도 몇 번의 출산이 이루어졌다. 무력하게 병실에 누워있으면 병실 밖으로 아기 울음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아기를 환영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친인척들의 들뜬 대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나는 울적한 한편으로 터질듯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부모들이 부러웠다. 세상을 향해 자신의 탄생을 스스럼없이 외치는 아이의 울음소리는 좁고 긴 복도를 가로질러 온 병원을 가득 울리는 것 같았다. 그건 단순히 아기의 짜증이나 투정 섞인 울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경이롭고 신비한 생의 시작, 그 자체였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는 너무나 먼, 결코 닿을 수 없는 소리같이 들렸다. 

 침대에 누워 몸, 특히 배 쪽에 아무런 힘을 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핏빛 분비물은 낮이건 밤이건 속절없이 울컥울컥 뿜어져 나왔다. 나는 생리대 대신 병원에서 받은 두꺼운 거즈 패드를 아래에 찬 채로 누워 지냈고 간호사들은 내 패드가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수시로 확인했다. 때로는 거즈 패드 위로 리트머스지를 덧대어 양수 검사를 하기도 했는데, 역시나 리트머스지 색깔은 변하지 않았다. 그 탓에 우리 부부도 병원에 있는 여러 산부인과 의사들도, 지금 내 몸에서 빠져나오는 액체가 양수인지 100프로 확신할 수 없는 듯했다. 하지만 이미 심각하게 줄어든 양수량을 눈으로 확인한 터라, 그것이 양수가 아니라 말하는 것도 이상했다. 이처럼 양수가 새는 증상이 보였던 초기에 정확한 원인과 진단명을 알 수 없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조기 양막 파수]라는 진단명을 들은 것은 이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병원에서 나는 마치 기저귀를 찬 어린아이 같이 작고 볼품없어졌다. 

 축축한 분비물로 적셔진 패드를 수거해 간 간호사들은 그를 두고 서로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개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Kanama [출혈] 정도였다. 병원에서 완벽하게 익힌 단어 중 하나로 그와 관련된 질문에는 어느 정도 대답이 가능했다.

Knama var mi?(출혈이 있나요?) 

Kanama var/yok (네, 출혈이 있습니다./아니요, 없습니다.) 

간호사들은 몇 시간 단위로 내 혈압과 체온을 확인하고, 감염을 대비한 항생제 약을 교체했으며, 의료진들에게 내 출혈 여부를 주기적으로 알렸다. (우선 내 분비물의 정의는 '출혈’로 명명되었다). 피와 알 수 없는 액체가 섞인 분비물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하루 이틀 시간은 흘러갔다. 입원당시 의사의 견해처럼 당장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임신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누구도 속단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을 맨정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물리적인 고통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을 때가 많았다. 


 한편 입원으로 대학교 강의 일정은 불가피하게 미뤄야만 했다. 2023년 1학기 개강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퇴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그 주차에 수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했으므로, 나는 내 상황을 학교에 상세히 알리고 양해를 구해 휴강 조치를 취했다. 내 컨디션에 대해 확신할 수도 없는 주제에 이런 책임감이 필요한 일을 덥석 맡겠다고 나섰던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무엇이 됐든 이 과정 속에서 어떤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떠올리기가 영 힘이 들었다. 나는 마치 중환자가 된 듯 침대에 축 늘어진 채 지냈다. 컨디션도 한없이 가라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이 버거웠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자주 범람하는 계절이지만 병실은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침대와 몸이 맞닿는 부위는 덥고 습했다. 몸에 살이 접히고 부딪히는 부위마다 진득하게 땀이 났다 마르기를 반복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분비물이 흘러내려 두꺼운 패드를 적셔대는 통에 하체 쪽은 늘 찝찝했다. 게다가 누운 자리에서 볼 일을 봐야 하니 소변 방울이 노골적으로 환자복 귀퉁이에 묻거나 몸 어딘가를 더럽혔다. 짜증 나는 동시에 정말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 오로지 가만히 누워있는 것 밖에 없었다. 침상 안정이란 의사의 절대적인 권고는, 정갈하게 정돈된 어른의 위신을 손쉽게 앗아가는 일이라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흐르는 물에 손 한번 씻는 일이 간절했다. 따뜻한 물이 흐르는 샤워기 아래에서 흠뻑 몸을 적져 말끔해지고 싶었다. 입원 4일 차가 되자 머리카락이 엉겨 붙어 덩어리째 얼굴에 달라붙곤 했다. 몸 여기저기에서 뿜어지는 불쾌한 냄새가 병실을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부탁해 손이 닿을만한 곳에 작은 거울을 가져다 두고 한 번씩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봤다. 거울 속 얼굴은 수액으로 부은 데다 머리카락은 볼품없이 뭉쳐있고 약간의 열감으로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남편은 내가 여전히 곱다 말해줬다. 부끄러웠지만 고마웠다. 

 사람들이 잘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은 여느 나라 사람들보다 청결과 위생에 깐깐한 편이다. 입원 5일 차를 지날 무렵 내 꼴을 보다 못한 조무사가 내 머리를 감겨주겠노라 두 팔을 걷어 부쳤다. 침대 바퀴의 잠금을 풀고 벽면에 붙어있던 침대를 아래로 내려 머리 쪽에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머리만 침대밖으로 쏙 빼내어 젖힌 후, 세숫대야에 받아온 따뜻한 물을 머리에 적셔 감겨주는 식이었다. 조무사는 능숙하게 내 머리를 씻겨 나갔다. 솔직히 직접 머리를 감고 씻는 것만큼 개운하진 않았다. 하지만 오래 묵은 떼가 다른 이의 능숙한 손길로 벗겨지는 감각을 잠시 즐기기로 했다. 나는 코를 벌름거리며 간만에 맡는 상큼한 샴푸향을 코 깊숙이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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