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원한 첫 번째 아가
16주차에 접어들어 오랜만에 병원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초음파를 통해서 본 아이는 한 달 전에 비해서 많이 자라 있었다. 초음파 한 뼘이면 시야 안에 다 잡히던 태아의 몸이 어느새 위아래양옆으로 훑어서 봐야 다 보일 만큼 자라났다. 그래봤자 150g의, 차마 몸무게라 부르기 하찮은 무게이기는 하지만 벌써 내 눈에는 아이가 사람의 모양을 다 갖춘 것만 같다. 정기검진인 덕분인지 나는 평소보다 오래 초음파로 아이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배를 까고 얌전히 누운 채로 의사 선생님에게 궁금했던 것, 그리고 염려했던 것 이것저것을 묻기도 했다. 양수는 넉넉한지, 자궁 속 공간이 아이에게 좁지 않은지, 피고임이 보이지는 않는지 등등... 아이의 안부가 시야로 확인되자마자 내심 불안했던 내 자궁의 컨디션에 대해 하나둘 확인하고 싶어졌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정상이며 이상 소견은 없다 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병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초음파 영상을 다시 꺼내봤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영상 속 아이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양수 공간이 널널한 쪽으로 손을 뻗어 작은 손가락이 보이는 듯도 하고, 작은 다리를 움찔거리며 엄마 배 어디를 차 볼까 장난칠 준비를 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산이 생각이 났다.
이산이를 가졌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아이에게 넉넉한 품을 내어주지 못했다. 임신 초부터 어딘지 모르게 좁은 곳에 끼여있는 것처럼, 아이는 잔뜩 몸을 웅크린 채 크고 있었다. 그것이 하도 이상하게 보였기에 여러 번 튀르키예 담당의에게 묻기도 했다. 의사는 초음파로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으니 염려할 것은 전혀 없다고 했었다. 임신 중기, 기어코 양막이 파손되어 양수가 새면서 자궁 속 공간은 아이에게 가혹하리만큼 좁아져갔다. 양수가 적으니 아이가 움직일 여유 공간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모락모락 제 몸집을 키워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면 뱃속에서 뻥 하고 발길질을 하는 것을 바로 알만큼, 이산이는 낮밤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이였다. 어쩌면 뱃속 공간이 너무 좁아 제 나름대로 애를 쓴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민다. 옹졸한 내 뱃속에서 작은 아이가 버텨냈어야 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죄스럽다. 이산이가 떠난 이후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으로 내가 겪었던 어려움들에 여러 안타까움을 전해왔지만, 나의 어려움은 이산이가 내 뱃속에서 견뎌냈던 시간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늘 이산, 내 첫 아이를 떠올린다. 다시 임신을 하고 보니 더 지극하게 생각이 난다.
둘째 아이의 성별은 남자 아이다. 이번 검진에서 그를 확증할 수 있는 또렷한 신체의 형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니프티 검사를 통해 3주 전쯤 이미 아이의 성별이 '남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딸을 원했던 남편은 약간 섭섭한 듯 보였지만 나는 그 사실을 들었을 때부터 기뻤다. 물론, 누구 말처럼 이산이가 다시 내게 와줬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는 이산이와는 분명 다른 생명체이자 우리의 또 다른 자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아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안심이 되었다. 그 마음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마음인지는 선명하게 알기가 어렵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차츰 이때의 나의 속내를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임신 상태는 여전히 불안함 속에 놓여있다. 뱃속 아이를 끝까지 잘 품어서 건강하게 이 세상에 데려올 수 있을지 나도 남편도,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불안함을 주체할 수 없을 때면 가까운 가족, 친구, 의사, 점사를 봐주는 무당을 찾아가서라도 불안을 잠식시킬 수 있는 부적 같은 '확신'을 얻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아마도, 그 끝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 말은 그저 지켜봐야 한다는 말 뿐이리라는 것을 안다. 지금은 그저 바라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부디 지금처럼 아이에게 모자람 없는 품을 내어줄 수 있기를, 비과학적인 것을 알지만 이산이가 동생을 잘 지켜주기를 말이다. 나도 참, 뻔뻔하게 떠나간 아이에게 부탁이나 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엄마라는 것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