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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의 동상이몽

두 나라 두 마음 사이에서

by BAEK Miyoung

글을 지웠다.

며칠 전, 브런치에 발행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글을 남편의 검열(?)로 조용히 내려야만 했다. 그 여파인지 임신 기간에 글이라도 주기적으로 써야지 했던 마음이 얼마간은 시무룩해 있었다. 글을 내린 데에는 남편의 의견에 동의한 나의 결정 역시 있었다. 아무래도 해당 국가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남편으로서는,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나의 글이 불편하다기보다는 불안했을 것이다. 그곳에 비비고 사는 것은 비단 남편 혼자가 아니다. 나뿐 아니라,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아기도 큰 이변이 없는 한 그곳에서 그곳 사람들과 어우르여 살아야 한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면서까지 몇 시간 동안 원고를 썼던 게 약간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랴.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임신을 한 여성의 몸과 개입하려는 국가 혹은 제삼자의 시선에 대해, 한번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이틀 전 이스탄불에는 큰 지진이 있었다. 진도 6.2의 쾌 큰 지진으로, 진앙지가 이스탄불 도심과 그리 멀지 않은 마르마라 해역이었기 때문에 남편도 집을 뒤흔드는 진동으로 즉시 지진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튀르키예는 여러 지각판이 겹치는 지역이라 역사적으로 잦은 지진을 겪어왔다. 하지만 이번 지진은 일상적인 지진이라기에는 규모가 큰 축에 속했고, 무엇보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2년 전 일어났던 지진의 트라우마를 아직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직까지는 건물이 무너지거나 사람이 죽는 등의 심각한 피해 사례가 보고되지는 않았으나, 지진을 알아차리자마자 패닉이 온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거나 갑작스레 뛰어나오는 통에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나는 남편이 걱정됐다. 곧 12살이 다 된 우리 집 반려견은 남편을 지켜내기에는 너무 늙고 무뎌졌다.(지진으로 집이 흔들렸음에도 별 반응이 없었다고...) 그곳에서 남편은 자신은 물론 반려견의 신상까지 지켜야 한다. 남편은 재난 가방을 챙겨 집을 떠나 넓은 공터로 가서 차박을 해야 할지 어쩔지 고민 중이었다. 재난 가방은 2년 전에 발생한 튀르키예 지진 직후에 만들어 둔 것이다. 튀르키예 사람들 뿐 아니라 남편과 나 역시 그때의 지진이 남긴 끔찍한 상흔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터였다. 나는 차박을 할지, 도시 밖으로 빠져나갈지 고민하고 있는 남편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이날 새벽까지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남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것 외에는 이 멀리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함께 하겠다 맹세했던 결혼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이런 때에는 남편과 함께 할 수 없는 내 상황이 한없이 답답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다는 건 괴로운 일이다. 서로의 고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여러 제한된 요소들은 각자를 더 예민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아주 작은 화제로 시작된 다툼이 큰 오해와 불신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난 주말을 앞두고 남편과 한차례 큰 다툼이 있었다. 남편의 한국 귀국 일정과 관련한 나의 불만에서부터 시작된 갈등이었다. 남편은 5월 말~6월 초 학기가 마무리되므로, 이후로는 일정 기간 비교적 일정이 자유로워진다. 나는 남편이 그 즉시 한국으로 와 나와 시간을 보내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빨라도 7월 중순은 되어야만 한국으로 귀국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의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다음으로는 여름동안 있을 자신의 개인적인 일정에 최대한 참석하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여러 이유들을 들으며 남편이(혹은 이 인간이) 던지는 분노의 씨앗이 내 가슴속에서 빠르게 발아하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정이 납득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직장의 상황 및 올여름 남편이 참석해야 할 여러 자리들에 대해 모르는 바도 아니었고, 앞선 대화를 통해 그들 중 많은 일정을 나 역시 동의했기 때문이다. 해외살이 5년 차. 남편은 조금씩 낯선 타국에서 자신의 위치와 자리를 공고하게 넓혀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당장 눈앞에 다가오는 기회를 모두 물리치기 어려우리라는 것을 안다. 때문에 남편이 7월에 오겠다는 뜻을 전해왔을 때, 나도 그 결정을 존중했다. 문제는 서로 동의한 일정 이외에, 올여름 추가적으로 발생할 여러 일정을 남편이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이쯤 되자 나는 속에서 불뚝하게 올라오는 모난 말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신을 하고 나는 두말없이 하던 모든 일을 중단했다. 할 수 있는 일, 기회들을 무 자르듯 놓는 것을 남편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그 와중에 내가 들었던 말은, 임신과 출산만큼 귀한 것은 없으니 내가 하는 일은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 뿐이었다. 슬펐지만, 나는 그 모든 말을 웃어넘겼다. 웃지 않는 임산부를 향해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이 모든 것을 함께 감내하자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이 지긋한 두 성인은 각자 책임져야 할 몫이 있다. 그럼에도 필수불가결의 일정이 아니라면, 나는 남편이 나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두었으면 싶었다. 그것이 욕심으로 비칠까 그 바람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남편이 쏘아붙인 한마디로 일단락되고 말았다.

"당신이 아무것도 못한다고 나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해?"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의지를 잃어버리고 전화를 끊었다. 한동인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 때문에 얼굴에 열감이 다 느껴졌다. 어느 정도 분노가 가라앉았을 때 나는 한통의 긴 문자를 썼다. 감정적인 대화는 말보다는 글로써 뜻을 전하는 것이 서로 간에 좋다. 결과적으로 남편은 나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했고 보통의 부부싸움이 그러하듯 몇 시간 만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아마 서로 마주하고 대화했더라면 이렇게 얼굴을 붉히면서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겠노라 고집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볼 수 없는 상황은 때로 자신을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모진 말이 되어 상대방을 향한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함에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입장 위주의 이 글 만으로, 누군가는 남편이 엄청나게 이기적인 사람이라 여길 수도 있다.(반대로 내가 지나치게 떼를 쓰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여태 살다 보니 세상 대부분의 일이 완전한 선으로만 행해지거나 완전한 악으로만 행해지지 않는 것 같다. 남편도 그만의 이유와 고민이 적을 리 만무하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가장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더 견고하게 다져놓는 일이 모두의 미래를 위한 최선이라 그는 믿고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의 시간을 약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의 동반자로서 그런 그를 마음을 어떻게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6.2의 지진이 있었던 밤, 다행히 남편이 야외에서 차박을 해야 할 만큼 상황이 극으로 치닿지는 않았지만 해당 지진 이후로도 튀르키예에는 지속적인 여진에 시달리고 있다. 지진 당일에는 이스탄불 외곽으로 빠져나가려는 차량들로 붐비는 탓에, 각 주유소마다 난리도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지진으로 인한 물리적인 피해도 두렵지만, 그만큼 패닉에 빠진 사람들로 인해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이 마비될까 봐도 무척 두렵다. 노파심에 깔아 둔 튀르키예 지진앱에서는 지금도 수시로 지진 알람이 뜬다. 마르마라해역뿐 아니라, 튀르키예 내륙에서도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것 같다. 부디 남편이 머물고 있는 그 땅에 그들이 믿는 신의 가호가 있길, 모두가 자신의 집 안에서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는 밤이 그곳에 계속 머물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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