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낯설게 그릴 때.
이 애니메이션에서 '물'은, 한 생명을 감싸 안아 그를 잉태함과 동시에, 그를 구속하는 속박의 존재로 등장한다. <바람> 애니메이션에는 두 가지의 색상만이 표현되는데- 하나는 푸른색, 나머지 하나는 꽃으로 대변되는 붉은 계열의 색이다. 특히 푸른색은 나비, 나비의 알, 물 등 가장 대표적인 컬러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도적으로 쓰이는 곳이 바로 '물'이라는 소재를 표현할 때다.
초반부부터 바람 애니메이션에서 '물'을 어떻게 표현할지 이런저런 궁리가 많았다.
부드러운 듯 강한 '물'이라는 소재는 표현하기 까다로운 속성의 물질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질감과 온도의 차이가 큰 소재 중 하나다. 너무 차갑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온화하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
작가들마다 자주 등장시키는 소재가 하나씩은 꼭 있다.
나의 경우는 '유리병'과 '물고기'가 바로 그런 소재들인데 사실 그를 인지한건 얼마 전의 일이다. 왜 꼭 그들을 그려 넣어야 했는지, 나는 정신의학을 알지 못 하므로,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작품에 동일한 소재를 반복하는 것은 아직 그를 통해 풀어낼 이야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라 했다. 처음에는 그래서 이런 반복적인 표현은 기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풀어낼 이야기가 남아있다면 애써 피하지 말고 그저 그려 넣고 싶은 건 그리자'라는 자세로 돌아서게 됐다. 그리고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그리 생각하게 된 건지는 명확히 알 순 없지만 물고기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자아로써 작품에 등장한다는 걸 깨달았다. 계절마다 업데이트되는 내 대표 캐릭터도 물고기의 이미지를 본떠서 만든 캐릭터다.
<바람>에도 어김없이 물고기가 등장한다. 상냥한 두 마리의 물고기가.
여기 등장하는 물고기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본연의 속성과는 반대로 거친 느낌이 드는 톤으로 그 질감을 표현하게 됐다. 물에 추가되는 빛의 느낌이 더 도드라져 보일 수 있도록 그리 설정했다. 이 역시 연필과 종이질감에서 얻어온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과 물고기가 융합됐을 때 더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몇 차례 수정과 수정의 과정을 거쳤다. 물에 비치는 빛의 느낌을 섬세하게 하고, 여러 겹의 반투명한 패턴을 변칙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투명한 듯 깊이감 있는 '물'을 표현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바람>은 대부분 디지털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간략한 선으로 애니메이팅을 테스트하고, 테스트가 완료되면 면(패턴)을 입혀서 소재의 질감과 움직임이 돋보일 수 있게끔 후반 작업을 거친다.
아래의 이미지에서 물고기는 이미 최종 패턴 작업까지 완료되었고, 물고기의 움직임을 쫒는 물의 애니메이팅은 테스트 과정 중에 있다.
*테스트 영상
애니메이팅 테스트가 끝나면 '물'역시 패턴, 또는 면을 입히는 과정을 거쳐 최종 이미지로 만들어진다.
*완료된 영상
위 영상에 들어가는 물고기의 움직임들을 하나의 '판' 위에 쭉 올려놔 봤다. 이래 놓고 보면 어쩐지 거대한 작업을 한 것 같아서 혼자 뿌듯해지곤 한다.